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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이 가장 많은 나라

유치원 등 교육 활동 통해 지역주민에게 다가가
종교적 갈등 많지만 주님 의지하며 지혜롭게 선교
            

 적도에서 북으로 약 1126㎞까지를 일컬어 위도 10°라 한다. 이곳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세력의 충돌이 빈번한 전선으로 전세계 13억 무슬림 중 절반이 그리고 20억 기독교인 가운데 60퍼센트가 이 곳에서 공존하고 있다.
 이 중 크고 작은 섬들로 이뤄진 세계 최대 도서국가 인도네시아는 2억 4000만 인구 가운데 10명 중 8명이 무슬림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살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개신교는 인구의 6퍼센트를 차지하며 다음으로는 힌두교가 5퍼센트, 가톨릭이 3퍼센트를 차지한다.

 인도네시아는 2002년 발리 폭탄 테러를 비롯해 2001년 자카르타 도심에서 벌어진 차량 폭탄테러, 2003년 자카르타 남부의 J.W. 메리어트 호텔, 2004년 호주 대사관, 2007년 자카르타 리츠칼튼 및 J.W. 메리어트 호텔 공격 등 기독교와 서방에 대한 무슬림 무장단체의 테러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이들 테러와 연관돼 있는 동남아시아 무장단체인 제마 이슬라미야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필리핀 남부를 하나의 이슬람 대국으로 통합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기도 했다.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충돌이 잦은 인도네시아에서는 2000년 초 무장 단체의 공격으로 술라웨시 섬의 한 기독교 마을이 초토화된 일이 있었다.  목적은 술라웨시에서 기독교인을 전부 몰아내고 7세기 무슬림 전성기를 완벽히 재현할 수 있도록 그 곳에 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었다. 종교의 정당성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갈등은 아무런 이득도 없이 종족간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낳고 말았다. 아직도 갈등이 멎지 않은 이 곳에도 전에는 순복음교회가 존재했다. 24년 전 선교의 사명을 품고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한치완 김애경 선교사에 의해 양육된 제자가 팔루에 세운 교회였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교회가 한 지역에서 정착하기까지 5년이 걸린다. 처음부터 십자가를 걸고 예배를 드리기란 불가능하다. 종교간의 마찰 때문이다. 때문에 개신교 사역자들은 대다수 어린이 유치원, 영어학원 등으로 지역 주민에게 접근해 친분을 갖는다. 그 후 서서히 교류를 나누고 예배를 드리며 지역 안에서 자리매김해야 한다. 팔루의 경우는 지역 주민의 반발이 거셌다. 아직까지 무슬림의 영향이 강하다는 증거다. 하지만 한치완 선교사의 제자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복음 사역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사역이 어렵긴 아체도 마찬가지다. 아체는 2004년 닥친 쓰나미로 13만명이 사망해 알려진 곳이다. 인도네시아 북서편 끝자락에 위치한 아체는 포르투갈 침략 때 항거하기 위해 모인 무슬림 학자, 교사, 무역상 등이 수마트라 아체로 모여든 것을 계기로 이후 반군의 본거지가 됐고, ‘메카의 입구’로 불리운다. 인도네시아 33개 지방 중 유일하게 이슬람법인 샤리아를 시행하고 있을 정도로 기독교에 대한 핍박은 거셌다. 2004년 쓰나미가 닥쳤을 때 많은 이들은 ‘신의 보복’을 운운하기도 했다. 한 때 이곳은 복구를 위해 서방 NGO들의 구호 활동을 허용한 적이 있다. 이 때 많은 기독교 단체들이 구호활동은 물론 복음 전파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또 다시 박해가 시작돼 기독교의 활동이 제재를 받고 있다.

 한치완 선교사의 제자 중 한 명이 아체에서 활동 중이나, 그 역시 사람들의 눈을 피해 호텔 또는 바닷가, 산으로 순회하며 예배를 드리는 실정이다. 성도들 가운데는 신변의 위협으로 교회를 떠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지만 믿음이 강한 성도들은 신앙을 끝까지 지켜나가고 있다.
 아체 아래 위치한 메단. 이곳에서는 아체 복음화를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사역하는 안진희 선교사가 있다. 안 선교사는 남편 최명수 선교사와 함께 2004년 이곳에 왔다. 주민 100퍼센트가 무슬림인 아체에 비해 기독교를 일부 허용하는 메단에서 안진희 선교사는 어린이 사역, 찬양 사역을 전개하며 순복음의 희망 씨앗을 심어가고 있다.

 유치원 사역을 통해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는 반둥의 정상용 선교사와 바탐의 차병수 선교사도 마찬가지다. 대신 자타르타 교민들을 위해서는 2010년 인도네시아로 파송된 강희전 목사가 맡고 있다.
 무슬림의 색깔은 도시보다는 시골로 갈 수도 성향이 짙다. 따라서 외국인보다는 현지 제자화를 통한 사역이 효과적이다. 한치완 선교사는 말랑시 수꾼에 신학교(말랑영산신학대학)를 세워 사역자 양성에 나서고 있다. 이뿐 아니라 유치원을 시작으로 초·중학교는 물론 기술고등학교까지 개원해 크리스천 지도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신학교는 현재 32명의 예비 사역자들이 훈련받고 있으며 지금까지 120명의 제자를 배출해 17개 교회가 개척되는 등 인도네시아 복음화에 헌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로부터 독립된 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에 의해 ‘판카실라’라 하여 5대 원칙, 유일신에 대한 믿음과 박애주의 민족주의 민주주의 및 사회 정의에 입각한 정치프로그램을 내세워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유교를 정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다양성 안에서의 통일’을 모토로 삼겠다는 의지이긴 하나 실상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신도 수는 한 동네에 최소 90명이 되야 하고, 60명의 무슬림이 건축에 동의해야 하며, 정부가 허가서를 발행해야만 신축이 가능’하다. 물론 정부가 허가서를 내준 경우는 드물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금식기도 결과 정부의 허가를 받아 서울 크기만한 바탐에 2010년 순복음교회를 완공한 차병수 선교사의 헌신은 대단하다 할 수 있다.

 도시의 경우는 공권력의 투입이 원활해 사역에 많은 어려움이 없지만 시골의 경우는 이슬람, 주술신앙이 강해 사역에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아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수마트라섬 북부 서해안에는 니아스섬이 있다. 지난해 9월 한치완 선교사 부부는 그 섬에서 사역하는 제자의 교회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하루 전날 교회 성도가 주술로 인해 죽음을 당한 일이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선교에 있어 이슬람의 제약도 있지만 주술의 힘도 무시할 수 없어 영적 전쟁을 위한 중보기도가 필요한 곳이다.

 여러 어려움을 딛고 현재 우리교회에서 파송된 5명의 선교사는 현지 제자들을 키워 인도네시아 복음화에 열정을 쏟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의 영향으로 많은 청년들이 무장 단체 활동에 가담돼 있지만 반대로 열정적인 젊은이들이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목숨걸고 헌신해 인도네시아 복음화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전방에서의 이러한 헌신과 열정을 위해 후방에서 할 일은 전폭적인 기도와 후원일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아낌없는 성도들의 관심에 언제나 감사하다며 인도네시아 복음화를 위해 쉼없이 중보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기사입력 : 2013.02.10. am 11:37 (입력)
오정선기자 (jungsun5@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