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기도 하며 진정한 회개 후 건강 회복
나는 젊었을 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술도 자주 많이 마셨다. 결국 건강이 크게 나빠져 당뇨병에 걸렸다. 병원에서는 술병과 당뇨 치료와 함께 정신과 치료도 권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소용없음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생전에 두려움과 초조, 몸이 쪼이는 증상으로 힘들어 하셨는데 나에게 그 증상이 생겼다. 어머니는 병원 치료는 물론, 굿도 수십 번하고 일본 종교에도 의지했지만 가산만 탕진하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 역시 시간이 갈수록 정신이 자꾸 없어지고 악몽은 더욱 심해졌다. 이러다가는 어머니처럼 나도 병을 고치려다 하나 남은 집까지 잃게 될 것 같았다. 그럼 아내와 어린 두 남매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는 자살을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친구를 만나 나 죽은 뒤 가족들을 부탁했다. 친구는 너도 내 부탁 하나만 들어달라며 “여의도순복음교회에 한번만 가보라”고 했다.
1979년 우리교회에 그렇게 오게 됐다. 처음 들은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 빠른 속도와 생소한 용어로 거의 알아듣지를 못했다. 세 번째 주일 예배에 참석하며 이번에도 아무 변화도 없으면 그만다니려 생각했다. 그날은 2부부터 4부까지 연달아 세번 예배를 드리는데도 몸이 이상하게 편했다. 신유기도시간에 조용기 목사님이 “2층에서 예배드리는 성도님 하나님께서 고쳐주셨으니 걱정마세요”라고 말씀하셨다.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예배 후 지역장님을 만났는데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를 하라고 했다. 3일 금식해서 안 되면 5일을 하라고 당부하고 가버리셨다. 나는 당뇨가 심해서 식사를 조금만 늦게 해도 눈이 퀭해졌다. 3일동안 고민을 하다 죽을 각오로 기도원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물을 많이 마시며 찬양하고 기도하며 하루가 지났다. 이상하게 기도하면 힘이 났다. 3일 째에 기도원에 올 때 버스 옆자리에 앉았던 청년은 응답을 받아서 내려간다고 했다. 나는 이틀을 더 연기했다. 집에서 연락이 왔다. 굿을 해야 하니 성경책을 다 태우고 어서 집으로 오라고 했다. 아내에게 단호히 “나는 못 간다. 이제 예수 믿으니까 못간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 후 머리가 더 아프고 견딜 수가 없어 누웠다. 자정쯤 됐을 때 옆에서 자는 사람 중 가장 성령 충만한 사람을 깨워서 기도굴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앞장서는 그분이 있는데도 누가 자꾸 나를 덮치고 허리를 잡는 것 같았다. 간신히 기도굴에 들어가 있는데 누가 문을 차고 난리가 났다. 함께 간 이가 ‘사탄아 물러가라’ 큰 소리로 물리친 뒤 잠잠해졌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몸을 치료해달라고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고 간절히 기도하는 중 회개기도가 터졌다. 한참을 기도하다보니 아픈 것이 사라지고 갑자기 시원해졌다. 눈을 떠보니 얼마 기도하지 않은 것 같은데 밖이 밝아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는데 천국에 온 것 같아 살을 꼬집어보기도 했다. 집에 온 뒤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늘 악몽으로 끝나던 꿈속에서 하나하나 무서운 것들이 떠나갔다. 두렵고 초조하던 마음이 없어지고 다쳤던 허리와 등의 신경통도 나았다. 약 바구니를 통째로 버렸다. 너무도 기쁜 마음에 교회로 달려와 ‘행복으로의 초대’를 한 아름 안고 나와 서울역에서 전도를 했다. 건강해진 몸과 마음으로 다시 사업을 일으켰다.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현대철재의 CEO로 열심히 일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20여년 전부터 직장이 있는 시화공단 내에 공단선교센터를 세워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섬기면서 날마다 새로운 기쁨을 느낀다. 또한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알기에 안산성전 중보기도대를 통해 교회 제직과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있다. 나를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을 온 세상에 전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