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니 밥상이 풍요로워집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홍합, 쫄깃한 식감이 제 맛인 버섯, 오도독 깨물어 먹는 재미의 꽃게, 그리고 무엇보다 포실포실 김이 올라오는 햇살로 지은 하얀 밥까지. 시장에서 재철 재료로 밥상을 차려놓고 “밥 먹어라!” 아들을 불러봅니다. 아, 그러면 재빨리 토끼같이 튀어 와야 할 텐데, 깜깜 무소식입니다. 슬슬 뿔따구가 나려던 차에, 예전에 음성학을 연구하시는 한 교수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대체로 우리나라 엄마들은 “밥 먹어라” 하고 아이를 부를 때 어떤 반찬을 했으니 지금부터 몇 분 뒤에 나와서 밥을 먹으면 되겠다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일이 적답니다. “밥 먹어라”라는 이 짧은 문장 하나를 다양한 톤과 억양, 그리고 높낮이로 이야기하며 많은 의미를 전달할 뿐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똑같은 이 말은, 상황에 따라 세 번 다 다르게 표현된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엄마가 처음 “밥 먹어라”를 말할 때는 적어도 몇 분간의 여유가 있다는 것을, 마지막에는 ‘분노 폭발’하기 몇 초 전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알아차린다는 겁니다. 긴 말 하지 않아도 처음의 권유와 달리 마지막에는 명령으로 변했다는 사실, 이번에도 오지 않으면 밥주걱이 날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낀다는 것이죠. 걔 중에 직감이 더 좋은 아이는 엄마가 “밥 먹어라” 라는 말을 가늘고 길게 내뱉을 때 혹은 무겁게 누르며 맨 끝을 더 낮게 내릴 때 그날의 반찬이 새로운 것인지, 늘 먹던 것과 비스무레한 것인지까지도 캐치해낸다고 하니, 참 재미난 일입니다. 음성학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굳이 음성학을 언급하지 않아도 그건 제 자식 하루 세끼 밥 먹이는 일을 세상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한민국 엄마이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생에서 만난 어미와 자식 간에도 이같이 직감으로 주고받는 언어가 있는데, 태초부터 나를 잘 알고 계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더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밥 먹어라”처럼 저 역시도 하나님과 직감으로 소통하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힘들 때, 기쁠 때, 놀랄 때, 슬플 때, 지칠 때, 막막할 때, 황당할 때, 분노할 때 내뱉는 한 문장, 바로 ‘아시지요’입니다. 하지만 같은 ‘아시지요’라는 문장도 기쁠 때는 ‘아’자에 액센트가 들어가고, 슬플 때는 뒤를 낮고 길게 끌고, 막막할 때는 스타카토처럼 한음씩 끊어 말하는 등 방법이 제각각 다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때때로 기도하는 것조차 힘들어 두 손을 모은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을 때면 하나님께서 먼저 “나도 안다”라며 말을 걸어 주시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하며, 내일도 아마 다양하고 독특한 멜로디로 “아시지요”라는 말을 하루 세끼 “밥 먹어라”처럼 자주 중얼거릴 겁니다. 나만의 목소리로, 나만의 리듬으로, 나만의 높낮이로 말입니다. 하나님과 나만의 비밀과도 같은 말 한 마디. 여러분은 그 분과 어떤 암호로 소통하시나요?

황여정(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