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케빈에 대하여’ 린 램지 감독님께
성장과정서 받은 거절 감정이 묻지마범죄로
끊임없는 관심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봐야

 서울은 슬슬 찬바람이 붑니다. 런던은 눅눅한 날이 많기로 유명한 줄 압니다. 먼저 런던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 받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들어서 알고 계시겠지만 한국의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영화제에 황금사자상을 받았습니다. 그 자부심 하나만으로도 영국의 주목받는 감독님께 글 쓸 용기가 났나 봅니다.

 유럽에서는 꽤나 문제작으로 화제가 됐던 감독님의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얼마전 보았습니다. 그닥 상영관이 많치 않아서 찾기가 힘들었지만 잘 만든 작품을 만나는 기쁨은 충분한 보상이었습니다. 한국이 영국보다 댓글문화가 발달한건 잘 아시지요. 미리 검색해보니 대다수의 네티즌들이 이 영화에 대해 높은 평점을 주었더군요.  

 감독님께서는 그동안 논란의 대상밖에 있었던 ‘모성(母性)’이라는 주제를 수면위로 끌어올리셨는데요. 임신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인생을 즐기던 에바라는 한 여인을 통해서 말입니다.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더군요. 스페인에서 매년 열리는 토마토 축제(latomatina)는 온통 붉은색 천지입니다. 케빈의 엄마가 될 운명을 모르는 채 축제에 열광하는 에바의 모습은 얼핏 십자가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축제는 비명으로 바뀌고 토마토의 붉은 색은 진한 핏빛으로 바뀌었습니다.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답게 영화 내내 감독님의 색깔 효과는 가슴을 후벼팔 정도로 강렬하더군요. 과거의 토마토축제가 현재의 붉은 페인트로 더렵혀진 에바의 집으로 변하는 장면에서 제 심장만 유난히 떨리진 않았을 것입니다. ‘공포영화인가?’ 장르를 의심할 정도였으니까요.

 엄마 역할인 에바는 영화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합니다. 자동차 유리에 투척된 붉은 페인트를 무덤덤하게 신문지로 투박하게 닦아 낼 때도 흉악한 범죄자로 감옥에 갇힌 아들을 면회할 때도 그랬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나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의 ‘엄마 표정’과는 사뭇 다릅니다.
 아들이 감옥에 갇힌 후, 에바는 시내의 허름한 여행사에 말단 행정직으로 취직을 합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저명한 저술가로 활동하던 그녀가 길거리에서 동네아줌마로부터 따귀를 맞는 순간 자존감조차도 잠수하듯 침몰합니다.
 다시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서, 어린 케빈이 엄마에게 반항하며 복수를 결심한 듯한 얼굴 표정을 지을 땐 정말 섬뜩했습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임신이었기에 저주하듯 아이를 낳았고 보모보다 못한 에바의 대사를 보기 전까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난 네가 태어나기 전에 더 행복했어. 너도 알지?
매일 아침 이런 소원을 빌어.
여기가 프랑스였으면 좋겠다! 라고!”
중세 프랑스에서는 아이들을 갖다버리는 관습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참 불편했습니다.

 에바는 엄마로서 준비가 안 된 인물로 묘사됐지만, 에바는 자신의 죄를 탕감 받으려는 듯 노력합니다. 어린 케빈에게 사랑을 주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케빈은 태아 때 들었던 저주의 말들을 기억합니다. 애기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서 공사장 소음으로 감추려 했던 에바의 행동은 케빈을 더 이상 울지 않는 강한 아이로 만들게 되죠. 태아는 임신 3개월부터 엄마의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피임약을 피해다니는 태아의 모습을 본적 있습니다. 결국 케빈은 엄마로부터 받았던 ‘거절감’에서 자신의 묻지마 범죄의 원인을 찾는 것 같습니다.

 감독님이 표현하고자 했던 ‘거절당함’은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 중의 하나입니다. 거절 감정은 우리의 의지를 공격하여 약화시키다가 결국은 우리를 완전히 파괴하고 맙니다. 상처 입은 심령은 결코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합니다. 사람에게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능력도 빼앗아 갑니다. 그런 관점에서 ‘악의 화신’으로 성장한 케빈이 16세 되던 해 묻지마 범죄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자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빠와 여동생을 죽이고 학교 체육관을 찾아가 친구들을 몰살했던 행위는 정서적인 차원을 넘어서 영적인 문제임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케빈의 성장과정에서 엄마 에바가 노력한 사랑의 흔적들을 꼼꼼히 복기해보아야 합니다. 가슴 떨리고 아픈 순간이 더 많았지만 이유를 묻지않고 에바는 케빈을 용서합니다. 2년동안 옥중에 간 아들을 찾아가 면회합니다. 따가운 시선을 용케 참아내며 동네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 그게 바로 하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성인감방으로 넘어가는 아들을 다정하게 껴안아주는 에바의 모습에서 죄인인 우리를 끝까지 기다리시고 용서해주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핏빛같은 붉은색으로 시작된 영화가 백색 화면으로 엔딩 됨은 감독님의 마지막 배려라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은 용납, 사랑과 안정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언제 거절감정을 경험했는지를 발견하고, 상처들을 치유하기 시작해야 그런 묻지마범죄들이 사라지리라 믿습니다. 한국에도 요즘 묻지마 범죄가 사회문제입니다. 감독님의 세심한 연출이 ‘왜 묻지마범죄가 일어나는가’에 대한 대답중 하나가 되길 바랍니다. 
 한국 가을은 지구상 최고의 날씨요 런던보다도 한수 위입니다. 한번 놀러오시면 붉게 물든 단풍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칼럼니스트 push98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