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교사대회에 대해
지난 호의 ‘교회일치 운동과 WCC―총론’에서는 19세기 선교현장에서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필요성이 싹트게 되었다는 점, ‘복음주의연맹’이 결성되었다는 점, 그리고 청년들을 중심으로 ‘YMCA’, ‘YWCA’, ‘WSCF’(세계기독학생연맹)와 같은 교회일치적인 청년기구들이 창립되었다는 점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19세기의 이러한 운동들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선교사대회’(‘세계선교대회’라고 말해지기도 한다)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선교사대회
20세기 초의 교회일치운동 중 대표적인 첫걸음은 1910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 개최된 세계선교사대회였다. 물론 19세기에도 이미 여러 번에 걸쳐 초교파적으로 선교대회들이 개최된 바 있었지만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는 이러한 대회들의 역사를 계승하는 대규모의 선교대회였다.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는 선교사들과 선교단체들이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현장에서 각 교파와 교회마다 중복적으로 복음전도 활동을 하거나 불필요한 경쟁을 배제하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졌다. 1910년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개최된 본 대회는 “이 세대 안에 전 세계를 복음화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영국과 미국, 북유럽 국가들의 선교단체들로부터 약 1200명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 대회에는 동방정교회나 로마가톨릭교회는 참여하지 않았고, 개신교 선교단체들만이 참여하였다.
세계선교사대회는 ‘스코틀랜드 연합교회’가 지원하였다. 이 교회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와 스코틀랜드 자유교회가 1900년에 통합되어 형성된 교회로서, 그 자체로 교회일치운동의 한 좋은 사례가 되는 교파였다. 스코틀랜드 연합교회는 세계선교사대회의 행사 장소로 자신들의 총회 회관을 제공하였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교회일치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버레이의 발포 경(1849∼1921)은 세계선교사대회의 총재로서 행사 전체를 지원하였다. 발포 경은 참석한 선교단체들과 선교사들에게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서로 “일치”를 존중할 것을 강조하며 행사를 축하하고 격려하였다. 대회의 의장은 세계기독학생연맹과 YMCA 대표를 오랫동안 맡았던 존 랄리 모트가 맡았으며, 실무는 영국 기독학생운동의 지도적 인사였던 조셉 훌스워트 올드함(1874∼1969)이 맡았다.
세계선교사대회는 이전의 선교대회들과 달리 하나의 협의체로서의 성격을 보여 주었다. 이전의 선교대회들은 단지 “왜 선교를 해야 하는가?”, “어디를 선교해야 하는가?”, “어떻게 선교하는 것이 좋은가?”와 같은 정보를 일방적으로 제공해주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는 “각각의 다양한 선교단체들과 선교사들이 어떻게 불필요한 중복을 피하면서 효과적으로 선교할 수 있을까?”,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어떻게 서로 협력하는 것이 좋을까?”와 같은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가지고 서로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발전을 보였다.
1910년 에딘버러에서 개최된 세계선교사대회는 19세기 선교현장에서 싹트게 된 교회일치운동의 정신을 구체화시킨 20세기 최초의 대표적인 대회였다. 대회의 진행에 있어서도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서로 정보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는 상호협의의 단계로 발전한 대회였다. 교회일치운동은 어느 한편이 자신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협의하고 이해함으로써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다.
2013 WCC 부산총회 준비위원회 제공
국제신학연구원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