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성찬주일 새벽, 뜻밖의 소식이 아프리카에서 전해왔다. 투루카나에서 사역하던 임연심 선교사가 현지시각 4일 오전 4시 30분 박테리아 감염과 고열 그리고 호흡곤란으로 소천했다는 것이다. 향년 61세. 너무나도 짧은 삶이었다. 조용기 목사와 이영훈 목사는 주일예배를 통해 아프리카 선교에 생명을 걸었던 고인을 기억했고, 아프리카 현지인들과 우리 성도들은 순교의 삶을 살다간 그녀를 추모했다.
◎ 가녀린 몸으로 부딪힌 아프리카 제1호 선교사
케냐의 최북단, 수단과 에티오피아 세 나라의 국경선이 맞닿은 지역 ‘투루카나’. 아프리카에서도 오지인 이곳이 우리들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1996년 순복음스크린을 통해서였다.
독일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 중이던 임연심 선교사는 우연히 예수전도단을 통해 아프리카 선교를 도왔다. 1984년 2월, 그녀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아프리카 케냐로 가서 3개월 동안 선교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케냐에서도 오지로 불리는 투루카나로 향했다. 얼마 후 투루카나에서 심한 영양실조와 말라리아에 시달리던 임 선교사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잠시 한국에 나왔지만 그녀는 다시 오지로 돌아갔다. 그리고 87년 5월, 여의도순복음교회 선교사로 정식 파송됐다. 아프리카 1호 선교사였다.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아프리카에서도 오지였던 투루카나에서 고아원과 유치원을 운영하며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상처난 고아들을 어루만졌다. 이들이 너무나도 불쌍해 주님께 도와달라며 매일 눈물로 기도했다. 하지만 열사의 땅에서 열정 하나만으로 복음을 전파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투루카나의 열악한 환경과 가난이 주는 고통은 복음 전파에 큰 장애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임 선교사는 고아들의 엄마가 되어 나무아래에서 찬양하며 예배를 드렸다. 그들은 이곳을 나무아래교회라고 불렀다. 이렇게 태어난 교회가 이들의 삶의 주축이 되어 갔다. 오지인 이곳이 복음을 들고간 여인을 통해 변하기 시작했다.

◎ 28년간 고아들의 엄마로 살다간 처녀
2006년 순복음방송국은 10년만에 투루카나를 다시 찾았다. 당시 비행장에 나온 임 선교사는 방송팀이 도착하자 눈물을 흘렸다. 왜 이런 곳에 다시 왔냐고 물었던 그녀는 척박한 땅에 다른 사람들이 와서 고생하는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게 여리고 정 많은 소녀같은 그녀였다. 그러나 원주민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 있는 그녀는 강한 엄마였다.
투루카나에는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나무아래교회가 우리성도들의 후원으로 교회가 건축된 것이다. 원주민들은 교회건축을 위해 4㎞를 걸어서 물을 길어왔고 돌을 주워왔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은 그녀의 꿈과 희망에 응답해주신 것이다.


고아원에 있던 아이들은 교사, 은행원, 회계사, 교육청 직원 등으로 성장했다. 의대를 1등으로 졸업해서 의료선교사가 되겠다고 서원한 아이는 진짜 의사가 됐다. 문맹률이 95%인 투루카나에서 이런 아이들이 나온 것은 기적이었다.
또 임 선교사는 현지인 제자교회 25개 교회를 개척했다. 문맹률 높은 이곳에 투루카나어와 스와힐리어로 성경말씀 낭독통독기를 제작했다. 이렇게 복음은 그녀를 통해 전해지고 전해졌다. 몇해전 중고등학교를 건축하기 위해 12만평 부지를 확보했다. 임연심 선교사는 이를 추진하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 “선교사님이 계셨기에 투루카나에 희망이 있습니다”
임연심 선교사는 이렇게 그가 사랑하는 ‘투루카나’를 놓고 떠났다. 함께 임종을 지켜본 이들은 “아메 투 아차(ametuacha, 우리를 놓고 그분이 가셨다)”라며 슬피 울었다. 임 선교사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 곁에는 마을 원주민들이 모여 있었고, 그녀가 키웠던 많은 아들과 딸들이 의사가 되고 지역 지도자가 되어 함께 있었다.
그녀는 옆에서 울고 있던 자녀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내 사명을 다 했다. 난 이제 가도 아주 행복하다. 행복하다…”
한편 케냐에서 사역하는 안태경 선교사는 “선교사님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헬기를 보냈다. 하지만 헬기가 도착하기 5분전 선교사님은 이미 주님의 품에 안기셨다. 우리는 나이로비에서 체온이 다 가시지 않은 시신을 받았다. 비록 임 선교사님은 가셨지만 고아원에서 자란 많은 아들과 딸들이 그녀의 삶을 대신하겠다고 눈물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임연심 선교사가 펼쳤던 선교는 순교 그리고 사랑 그 자체였다.
우리는 사랑하는 임연심 선교사를 잃었다. 너무나 마음은 아프지만 영광 중에 천국으로 간 임연심 선교사는 영원히 우리 마음에 남을 것이다.
◎ 심장은 투루카나에 남기고…15일 교회장
임연심 선교사의 빈소는 6일 임 선교사의 자택에 마련됐다. 한국에서는 선교개척국장 김판호 목사와 (사)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아프리카선교회 회장 이상군 장로가 부고를 듣고 바로 아프리카로 출발해 장례를 진행했다. 임연심 선교사의 심장은 그토록 사랑했던 투루카나에 남겨졌다. 그리고 유골은 13일 새벽 5시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 8호실에 안치된 유골은 15일 우리교회로 온다. 이날 오전 7시 제2교육관 1층 사랑성전에서 당회장 이영훈 목사의 인도로 발인예배가 드려질 예정이다. 예배 후 임연심 선교사는 크리스챤 메모리얼 파크에 안치된다.
글 이소흔 / 편집 김성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