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큰 조카가 결혼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학교 다닐 땐 무던히도 부모 속을 썩이던 아이였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노랑 물들인 머리에, 찢어져 다리통이 너펄대는 청바지를 입고 기타를 둘러메고 밤낮 무슨 음악회 멤버라며 쫓아다녔다. 올케언니가 아들자식 애물단지라고 한숨 쉴 만큼 사귀는 여자 친구도 많다더니 이십대 후반에 장가를 갔다. 장가를 간 게 아니라 결혼하면 혹시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 부모가 반 강제로 결혼을 밀어붙인 것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가장이 되더니 조카가 완전 딴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회사에선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제 아내 제 자식 챙기느라 바쁜 와중에 부모님도 자주 들여다본단다.

 돌잔치에 초대받아 조카네 집을 방문했는데 아이 우유 먹이는 모습이 아주 익숙해 보였다. 퇴근하면 아이들 보살피고 집안일도 열심히 거든다기에 제법이라고 칭찬했더니 요즘은 이 정도 돕지 않고 이혼당하지 않는다면 외려 기적이란다.

 조카를 보면서 젊은이들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피문화가 들어와 장발이 기승을 부리던 때도 있었고 나팔바지에 찢어진 청바지의 열풍도 한 때를 풍미한 젊은이들의 트랜드였다. 어른들은 이런 청년들을 보면서 개탄해 마지않았다. 쟤들이 앞으로 열어갈 세상이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염려가 기우로 끝나는 것을 종종 본다.

 지금은 성실한 직장인인 내 아들도 청소년 때는 신발보다 긴 청바지자락으로 거리를 휩쓸던 때가 있었다. 너덜너덜한 바지 끝자락이 길바닥을 쓸어오니 얼마나 지저분한지 몰랐다. 하루는 수선 집에 가서 적당한 길이로 바짓단을 단정하게 잘라 꿰맨 후 주었는데, 왜 엄마는 물어보지도 않고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며 화를 벌컥 내는 게 아닌가. 아이는 그 청바지를 다신 입지 않았고 새 바지를 사 왔는데 또 긴 바짓단으로 길을 쓸고 다녔다. 결국 나만 무식한 엄마가 된 셈이다. 지금도 아이를 노엽게 한 그 때의 내 행동이 부끄럽기만 하다.

 그렇게 속상하던 때가 한 때였다. 지나고 보니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사리분별력이 있고 반듯했다. 어른들이 자의로 판단해 청년들을 나무라지 말고 조용히 기다려주어야 할 것이다. 한때의 모습이 별나다고 형편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질풍노도의 계절을 보내는 동안 청년들은 왕성한 혈기를 어쩌지 못해 몸부림을 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돌아와 제 자리에 설 줄 안다. 오뚝이처럼.

조임생 권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