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차량용 블랙박스가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억울한 일은 당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운전자들은 누가 잘못했는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자신의 실수 여부도 분명히 압니다. 그러나 일단 부인하거나 외면하고 봅니다.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일수록 차량 주변 상황을 녹화하는 기록장치의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필자도 회사와 집 그리고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종종 뺑소니 피해를 입곤 했습니다. 사고 직후 현장에서 가해차량을 확인한 한 번의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범인’을 잡지 못했습니다. 동료 중에도 비슷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꽤 있습니다. 심증이 가는 용의 차량을 발견하더라도 CCTV화면 등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기 전에 순순히 실수를 시인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CCTV 녹화 화면을 보면 가해차량 운전자가 사고를 낸 뒤 당황하다가 그냥 뺑소니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뺑소니 운전자는 녹화된 화면을 보여주기 직전까지도 계속 거짓말을 했습니다.

 주차장에서 벌어지는 접촉사고는 차체 표면이 약간 찌그러지거나 도장이 벗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모서리에 주차된 차량의 범퍼를 실수로 긁거나, 차문을 열면서 바로 옆에 주차된 차량의 문짝에 흠집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다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수리비도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CCTV를 확인하고 얼굴 붉히며 언성을 높이지 않더라도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쉽게 해결될 일입니다. 물론 가끔씩 차량 수리비를 엄청나게 청구하는 몰지각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다고 양심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최근 한 회사의 내부 게시판에 흥미로운 글이 올라왔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가 피해를 입은 차주를 찾는다는 내용입니다. 글을 올린 사람은 주차장 관리인이 아니라 가해차량 운전자였습니다. 복잡한 주차장에서 이동하던 중 다른 차량을 살짝 들이받았는데, 연락처를 남기기 위해 볼펜과 종이를 구하러 간 사이에 피해차량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피해차량 운전자는 아마 접촉 사고가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냥 차를 몰고 나간 모양입니다. 이쯤 되면 내심 ‘다행이다’라고 쾌재를 부르면서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 인지상정일 텐데, 글을 올린 사람은 구태여 피해자를 찾아서 피해보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다 있구나 싶었습니다.

 회사 안에 잔잔한 감동을 일으킨 주인공은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아마도 신앙인으로서의 양심 때문에 자신의 자그마한 실수조차도 책임을 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 입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외면해도 될 일을 구태여 피해자를 찾아서 보상하겠다는 그 마음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나신하 기자(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