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스타’라는 TV 프로그램 보신 적 있으신가요? 연둣잎 새싹 같은 젊은 경연자들이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평가받는 노래 경연의 각축장입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경연자의 노래가 끝난 후 이어지는 심사평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 명의 심사위원 중에서 현재 JYP라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대표인 박진영 씨는 촌철살인과도 같은 멘트를 날려 방송 후에도 인터넷에서 회자되곤 합니다. 그는 무대에서 애써 노래를 마친 경연자들에게 한결같이 고개를 저으며 말합니다. “노래 대충 부르세요. 기억하세요. 노래는 대충 불러야 합니다” 처음 그의 심사평을 들었을 때는 ‘엥? 이게 무슨 장난 같은 말인가? 경쟁의 무대에 선 사람에게 대충이라니…’ 참 엉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일본 ‘다이소’ 회사의 사장 야노 히로타케 씨는 한 인터뷰 글을 읽고 그이의 말에 속뜻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야노 히로타케 씨는 다이소 성공 요인을 묻는 기자들에게 말합니다. “저에게는 경영 계획, 전략, 목표 그런 거 없습니다” “저는 별 수 없는 아저씨일 뿐입니다. 열등합니다. 그게 접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CEO라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자신의 성공 신화를 읊어대고 싶기 마련인데 그는 달랐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야노 히로타케 씨의 경영법은 박진영 씨의 ‘대충 자세’와 일맥상통한다는 겁니다. 노래를 대충 불러야 하듯이, 경영도 대충하는 게 성공 요인이라면 요인인 겁니다.

 젖 먹던 힘을 보태야 살아지는 게 생인가 보다 싶을 정도로 애쓰지 않으면 뭐 하나 그냥 주어지는 게 없는 고된 인생살이에 대충이라니요. 우리는 ‘대충’이라는 말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정적 인식이 팽배합니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순간부터 은퇴하는 순간까지 좋은 학교, 좋은 회사, 좋은 배우자를 위해 당연히 애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어왔으니까요. 그런 우리들에게 ‘대충’ 하라는 것은 ‘열심히’ 하라는 것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주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애쓰며 살아왔다면 나머지 생은 한번 대충 살아보면 어떨까요. 너무 잘 하려고 하면 오히려 실수가 나듯이, 먼저 마음을 비워보는 겁니다. 치밀한 계획, 과도한 수고 모두 부질없고 ‘대충’의 자세로 삶 자체를 즐겨보는 겁니다.

 제가 먼저 해봤습니다. 야노 히로타케 씨처럼 수시로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뭐 철학, 전략 이런 거 없다. 나는 그냥 인간일 뿐이다” 이렇듯 큰 맘 먹고 삶의 자세를 바꾸니 치켜 올려 떴던 눈매가 내려가고, 뭉쳤던 어깨 근육도 이완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한결 여유로워졌고요. 그러자 인생이라는 무대에 서 있는 제게 하나님이 불현듯 심사평을 던지셨습니다. “그래, 한결 행복해 보이는구나. 내가 너에게 원하는 건 1등 인생도, 100점짜리 인생도 아니란다. 넌 이미 내가 만든 순간부터 1등이고 100점짜리 작품이거든. 그냥 나와 함께 네 생을 즐겨보자꾸나”

황여정(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