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그 누군가의 첫사랑입니다.

 극장을 나서면서 제 기억들은 피존없이 탈수기에 넣은 속옷들처럼 엉켜버렸습니다. ‘여자들이 좋아할 영화야’라고 가슴을 움켜쥐었지만 하마터면 제 첫사랑을 동료에게 털어놓을뻔 했으니까요. 여주인공 가슴에 묻혀있던 건축학개론 책과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 선율 대신, 또다른 두가지로 영화의 실타래를 풀어볼까 합니다. 스포일러 팍팍 질러주던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무한제공으로 리뷰 시작합니다.

 동화적 가사와 몽환적 멜로디가 가슴을 흔드는 영화 ‘봄날은 간다’의 OST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먼 북소리’를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원조 한류 스타 이영애가 열연했던 ‘봄날은 간다’에서 김윤아의 보컬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봄처럼 아련합니다. 그 시작은 이렇습니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불신자들도 한번쯤 들어봤을 제자 베드로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베드로의 마음도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으로 저려왔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을 그리워하며 베드로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을텐데요. 그의 첫사랑이 그만큼 강렬했습니다. 첫만남부터 텅 빈 그물이 찢어지도록 사랑을 경험했던 베드로였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언젠가 엘리베이터에서 첫사랑에 가슴아파했을 만한 예쁜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가슴에 안겨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눈에 띄었는데 유럽체류 중 쓴 여행기 ‘먼 북소리’였습니다. 책 중간쯤 가르마를 타보면 이탈리아를 여행하다가 만난 메타마을 이야기가 나옵니다. 희한하게도 메타마을은 옆동네인 산 사비노 마을과 전혀 교류가 없습니다. 서로 200m밖에 안되는 거리가 우주의 빅뱅만큼 떨어져 있어 상대방에 대한 미확인 반감기류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산 사비노 출신의 남자와 메타 출신 여자의 양집안은 평생 오고가는 일도 없습니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이야기라고 하루키는 말합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증오하는 사이였습니다. 땅을 밟지않기 위해 길도 돌아서 갈 정도였으니까요. 그럼에도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을 찾아간 예수님의 사랑이야말로 강력합니다. 돌아가지 않습니다. 정공법입니다. ‘물’을 주면 ‘생수’를 주시겠다고 합니다. 소외됨, 지역갈등, 반감 등의 단어는 주님의 사랑 앞에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영화속에서 승민의 사랑법은 도전적이지 못합니다. 첫사랑을 위한 영화적 장치로 정릉의 한 빈 집이 준비됩니다. 서연이 주저주저하는 승민을 제치고 빈 집의 문을 열어젖힙니다. 승민은 늘 그렇습니다. 첫눈 오는날 만나자는 말도, CD플레이어 이어폰을 건네는 것도 서연의 몫입니다. 분위기까지 만들어주어야 겨우 승민은 첫키스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승민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적극적입니다. 육신의 옷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내 사랑을 확실히 알려주마’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내가 이만큼 너를 사랑한다’하며 두 팔을 벌린채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사랑의 메신저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연애뇌구조’의 저자인 빌&팸 파렐은 ‘남자는 와플, 여자는 스파게티’라고 단언합니다. 칸칸이 나뉜 남자의 생각을 여자들은 이해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다른 국수가락으로 넘어가기도 하는 끊임없는 여자들의 생각 또한 남자들은 도통 이해못합니다. 서로가 다른점을 인정하지 못해 대부분의 첫사랑은 기억으로만 남는가 봅니다. 영화속에서도 승민(엄태웅, 이제훈)은 서연(한가인, 수지)을 어렵지않게 먹을 수 있는 길거리 오뎅보다 더 쉽게 오해합니다. 승민은 심지어 같은과 선배에 대한 열등감마저 갖습니다. 선배의 부축으로 반지하 방으로 들어가는 술취한 서연을 보며 승민은 KTX보다 더 빠른속도로 마음을 접습니다.

 상대방 마음 읽지 못하기의 달인은 요나입니다. 니느웨로 가라했는데 다시스로 갑니다. 심판선포에 회개하는 니느웨 백성을 하나님은 사랑으로 감싸 안으시지만 요나는 싫어하고 성을 버럭냅니다. 살인자 가인과 더불어 화려한 ‘오해’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요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 못합니다. 도리어 쉽게 짜증을 냅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드렸던 기도조차 잊은듯 요나는 박넝쿨로 기뻐하고 박넝쿨 때문에 화를 냅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 하나님은 일일이 설명해주십니다. 영화 속 승민옆에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헤어진 후 15년이 지나서야 둘은 다시 만나게 됩니다. 반가운 마음에 서연이 ‘잘있었어?’말하며 웃지만, 승민은 ‘누구세요?’하며 또 한발짝 물러섭니다. 결혼을 앞둔 약혼녀에게 말해놓은 첫사랑에 대한 안좋은 말의 씨앗들 때문이었죠. 닭울기 전 삼세판 예수님을 저주하고 부인했던 베드로의 마음 또한 그러했을 것입니다. ‘내 집을 지어 줘’라는 서연의 부탁은 그런 승민의 죄책감에 대한 용서입니다. 디베랴 강가에 섰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지만 친히 떡과 생선을 구우시며 용서의 브런치를 준비하시는 주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에베소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것입니다. 회개하고 처음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자꾸 첫사랑을 깜빡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서로의 첫사랑을 확인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따분할 것 같은데 따뜻한 영화입니다. 우리도 그 누군가에게는 첫사랑이었을 테니까요. 단지, 영화를 본 후에 ‘나의 한가인은 어디에 있는거야’ 하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우리 기억속에 있던 순수함은 실망뿐인 습작으로 남을테니까요. 세월이 가도 변치 않는 것은 오직 주님의 사랑뿐입니다.  

<Tip 영화 안보신분들은 본 내용을 잘 이해하기 힘드니 영화를 보신후 읽으시기 바랍니다>

칼럼니스트 push98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