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령이는 주님이 주신 아들입니다”

지적 2급 장애 딛고 첼리스트로 ‘우뚝’
‘하나님 자녀’ 정체성으로 자신감 넘쳐
장애우 가정 격려위해 에세이집 출간

 김어령은 첼리스트다. 세종대 대학원 음악과 재학중인 그는 온누리사랑챔버와 밀알앙상블 멤버이며 국내와 미국 홍콩 체코 독일 등 해외에서 많은 연주를 했다. 음악 뿐 아니라 미술적 재능도 남달라 고등학교 때는 관훈미술관에서 ‘어령이와 함께 하는 알콩달콩 이야기전’ 개인전을 가졌다. 예술적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그지만 뇌 손상으로 인한 지적장애 2급 장애우다.

 하지만 장애우라는 편견에 맞서 이 사회에서 당당히 살아간다. 부모 등 가족의 눈물 어린 보살핌과 사랑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특히 어머니 송명애 권사는 30년 세월 아들과 동행하며 그의 모든 것이 돼 줬다. 눈물도 많이 흘렸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아픔도 컸다. 그래도 어머니는 현실 앞에 무너지지 않고 믿음으로 일어섰고, 고난과 맞서 이겼다.

 그리고 장애아를 둔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소중했던 지난날을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놨다. 송 권사는 책 속에 아들의 장애로 인한 고통과 슬픔만을 담고 싶지 않았다. 아들로 인해 얻은 기쁨, 아들로부터 행복을 얻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두 다 쏟아내고 싶었다. ‘어령아, 훨 훨 날아라’(가이드포스트)라는 제목처럼 모든 장애아들과 가족들이 훨훨 날 수 있도록 돕기 원했다.

세상에 하나 뿐인 귀한 아들

 1983년 어령이가 태어났을 때 송명애 권사는 행복했다. 아픈 곳 없이 태어난 것이 감사했다. 그런데 첫 돌이 지나면서 송 권사의 걱정은 시작됐다. 어령이가 걸음마를 떼지 못하고 말이 또래보다 서툴렀다. 주변에서는 ‘늦된 아이도 있다’며 위로했다. 두 돌 가까이 될 무렵 송명애 권사는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뇌종양과 뇌수종이었다. 숨이 멎는 듯 했지만 한줄기 빛을 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아들을 업고 신유의 은사가 있다는 권사님을 찾아가 일년 동안 기도로 매달려보았다.

 그러나 절박한 기도가 끝날 즈음 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졌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이루어야 할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결국 어령이는 세 돌도 되기 전 두 번의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확연히 달라진 신체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신체 오른쪽 운동신경이 훨씬 둔해졌고, 어눌한 말 역시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후유증 없이 지금까지 지내는 것만으로 어머니 송 권사는 감사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들을 어머니는 어디든 업고 다녔다. 사람들은 그런 송 권사를 위 아래로 훑어보며 수군거렸다. 하지만 송 권사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하게 행동했다. 아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다른 건 몰라도 어릴 때부터 신앙교육을 시켰다.

 “장애아를 둔 가정에서 겪는 고통이란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요. 장애를 감추기도 하고 아픔을 표출하지 않아 가족 모두 내면에 상처가 깊어요. 이혼을 생각하지 않은 부부가 없을 걸요. 하지만 상처를 이기고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믿는 것 밖에 없어요”

 송명애 권사 역시 아픔이 컸지만 그는 믿음으로 숱한 고비들을 이겨 나갔다. 아들을 키우며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란 생각에 감사했다.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

 어령이는 틈만 나면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송명애 권사는 아들의 그림이 담긴 메모를 모아 친구의 소개로 한 화실을 찾았다. 그림을 본 선생님의 반응은 놀라웠다. 우연한 기회에 어령이의 작품을 본 화백도 “터치가 살아있다”고 호평했다.

 어령이가 사랑한 것은 그림만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했던 아이는 피아노 소리를 한 번 들으면 연주를 했다. 하지만 오른손과 손가락에 힘이 없어 연주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어령이는 음악을 하고 싶어 했다. 어령이가 중학생이 됐을 때, 교회에서 장애아들을 위한 음악교실이 개설됐다. 오디션을 보는 날 어령이는 사라사테의 바이올린 곡 ‘지고이네르바이젠’을 피아노로 편곡해 연주했다. 놀란 선생님은 무슨 악기를 하고 싶냐고 물었다. 뜻밖에도 어령이는 “콘트라베이스”라고 답했다.

 송 권사는 콘트라베이스는 무겁고 좀 어렵다며 첼로를 권했다. 2주 정도 설득 끝에 아이는 첼로를 택했고 온누리 장애우음악교실 단원이 됐다. 그에게 처음 첼로를 가르쳐준 사람은 KBS교향악단 출신 정현애 권사였다. 오른손이 약하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어령이는 첼로를 빠르게 익혀갔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한 독주회를 기획했다. 궁리 끝에 아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도 함께 열기로 했다. 160개 작품이 든 포트폴리오를 만들었고, 전시할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누구도 받아줄 생각을 안했다.

 송 권사는 ‘아이에게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다. 마침내 생각해보겠다는 한 갤러리 원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관훈갤러리 쪽에서 OK됐다”는 것이었다. ‘인사동 하면 관훈갤러리 아닌가. 그런 곳에서 어령이 작품을…’ 송 권사는 믿기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생인 어령이는 관훈갤러리에서 그림과 자신의 연주가 깃든 ‘알콩달콩 이야기전’을 가졌다. 반응은 대단했다. 미술계에서 명성이 대단했던 황창배 화백도 전시회를 찾아와서 어령이를 칭찬했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은 참으로 놀라웠다.

“어령이는 하늘나라 왕자입니다”

 어령이에게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 장애아라는 이유만으로 학급에서 심한 놀림을 당할 때가 많았다. 송 권사는 “학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령이는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학교 가야 합니다!”라며 매일 교복을 챙겨 입었다.

 하루는 학교에 갔다 온 아이의 얼굴이 어두웠다.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간 아이는 찬송가 CD를 틀어놓고 어둠 속에서 어눌한 목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친구의 괴롭힘을 극복하게 해달라는 어령이의 간구였다. 송 권사는 안쓰러운 한편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나가려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송 권사의 신앙교육은 철저했다. 덕분에 어령이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확실했고 어디를 가든지 당당했다. 송 권사는 “모든 장애아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만 있으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령이의 첼로 실력은 어머니의 열정과 기도로 세종대 음대에 입학하면서 더 빛을 발했다. 마스터 클래스 때마다 교수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연주자들이 어려워하는 쇼스타코비치의 곡들도 어령이는 소화해 냈다. 아니 즐겼다. 대학졸업 연주 때는 기립박수를 받았다. 아들의 진로를 놓고 오랜 시간 고민했던 어머니는 그저 하나님께 감사 기도밖에 할 것이 없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공연이 있을 때면 송명애 권사는 언제나 무대 뒤에 서 있었다. 그리고 숨죽여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장애아들을 키우면서 언제나 씩씩했던 그녀가 아들의 공연을 보면서 눈물을 보인 건 딱 한번이었다.

 세종대 입학 후 첫 학내 연주 때 어령이는 하이든의 첼로 곡을 연주했다. 긴장하는 아들을 보면 송 권사는 울컥 눈물이 났다. ‘하나님, 당신께서 주신 아들입니다’

“어령아, 훨 훨 날아라”

 사람들은 이제 김어령하면 장애인보다는 첼리스트를 먼저 떠올린다. 그가 첼로 선율에 담아 주님을 노래할 때면 가슴에서 울림이 난다. 그가 즐겨 연주한다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축복하노라’를 듣고 있으면 주님 사랑에 감사고백이 절로 나온다.

 인터뷰 당시 공연 연습을 준비하며 첼로를 꺼내드는 그가 보였다. 자세를 가다듬고 연주를 시작한 그는 금방이라도 훨훨 날아갈 것만 같았다. 송명애 권사는 이제껏 살아온 삶을 마리오네트(줄 인형극)에 비유했다.

 “하나님이 나와 어령이를 지금까지 걸어오게 하셨어요. 우리의 재능을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겁니다. 어령이의 미래도 전적으로 그분께 맡길 뿐입니다”

 저 하늘에서 믿음의 줄로 송명애 권사와 어령이를 붙잡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상상했다. 그분 안에서라면 이 귀한 아들이 더 높이, 더 멀리 훨훨 날아오르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글·오정선 / 사진·김용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