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문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쓸쓸하다. 동네 터줏대감이던 옆집 할머니가 갑작스런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하신 후 집이 늘 비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계실 때 옆집은 언제나 현관문이 열려있다시피 했다. 마을 사람들이 내 집처럼 드나들며 차도 마시고 이야기보따리도 풀어 놓는 곳이다. 글을 쓰고 공부하는 동안에도 웃음소리가 호탕하게 들리면 참을 수 없는 이끌림의 유혹에 빠져들곤 했다.

 요즘 서울의 집은 이웃이 없다고들 까지 하는데 우리 동네는 그동안 할머니 덕분에 아래윗집 옆집들이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다.
 “어여 와. 커피 한 잔 하자고”

 살집이 풍성한 할머니는 마음도 그만이나 넉넉하셨다. 아침 일찍 아들며느리 출근시키고 나면 종일 혼자시니 사람이 그립기도 하셨으리라. 이웃끼리 모여 나누는 이야기 주제야 뻔하다. 구절양장 굽이굽이 살아온 옛이야기, 며느리 손주 이야기보따리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할머니네 집은 동네 사랑방이었던 셈이다. 모이면 으레 먹을 것도 필요하니 서로들 음식접시도 들고 왔다. 덕분에 이웃끼리 친밀해지고 동네 중요한 일도 터줏대감 할머니 입김이 단연 우세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한다. 할머니가 119 구급차에 실려 가신 뒤 낮에는 늘 빈 집인 할머니의 집은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느껴진다. 집이 곧 집이 아니라 사람이 집인 것 같다. 병원에 문병을 갔더니 할머니는 몸의 왼쪽 부분에 마비증세가 왔고 언어능력도 상실돼 소통마저 어려웠다. 그저 눈물만 지으실 뿐이다. 그렇게 청산유수로 말을 잘 하시던 분이, 매일같이 한보따리씩 빨래를 해서 빨랫줄에 너시던 정갈한 분이, 해마다 손수 장을 담그고 김장을 하고, 장아찌를 담그던 분의 모습이 이젠 추억 속에만 남게 됐다.

 사랑방이 없어진 후 마을 사람들은 적조해졌다. 주민들 스스로가 외로운 섬이 돼 버린 것이다. 있을 때는 할머니의 존재가치를 의식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할머니와 함께 한 날들을 그리워한다. 할머니가 바로 이웃의 아름다운 가교였던 것이다.

 어느 권사님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사 가셨는데 성령의 감동으로 자신의 집 방 한 칸을 개방해 나눔 방을 만들었다. 그러자 호응이 놀라웠다고 한다. 사람들이 신앙 안에서 서로 나누고 기도했는데 마음의 상처들이 놀랍게 치유 받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이란 알게 모르게 고독한 존재들이다. 삶 속에서 혼자 삭여야 할 것들을 나누는 나눔 방은 마음치유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언젠가 나도 권사님 같은 나눔 방을 드리고 싶어진다.
 옆집 할머니의 불 꺼진 창에 다시 불이 켜지길 기도하며….

조임생 권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