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습니다. 북풍한설 몰아치던 때가 엊그젠가 싶더니 벌써 봄입니다. 말도 못하게 시리던 겨울의 위세에 눌려 숨 죽였던 기억도 잠시 뿐이고, 잿빛으로 내려앉았던 세상에도 하루가 다르게 파릇파릇 봄기운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창가에 앉아 있으면 유리창을 통과한 햇볕이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마저 줍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러 가는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꽃샘추위가 물러나자마자 집안에도 봄을 들일 채비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서재 정리부터 시작했는데 의외로 큰 일이 돼 버렸습니다. 회사 일을 핑계 삼아 방치하다시피 했더니 어수선한 창고처럼 돼버렸습니다. 책상과 책장은 물론 방바닥까지 책과 CD, 잡동사니 차지가 됐습니다. 집안을 정리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딱히 쓸데가 없는데도 괜히 아까워서 쟁여두고 사는 물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물건에는 저마다의 이력이 있고 추억이 있지만 사실 없어도 별 상관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없어도 상관없지만 ‘만약의 순간’을 대비해서 버리지 못할 뿐입니다. 언젠가는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언젠가’가 ‘언제’인지는 전혀 모릅니다. 낡은 것을 버리지 못하면 새로운 것을 채우지 못합니다. 버리지 못하면 집안은 순식간에 잡동사니 투성이가 됩니다.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지나간 것을 잊지 못하고 쌓아두면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거듭난 크리스천은 과거의 자아와 이별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겨우살이에 지친 화초를 재단장하는 것도 큰일입니다. 공기 정화용으로 기르기 시작한 화초들이 발코니 한쪽을 가득 차지하고 있어서 조금만 관리를 게을리 하면 금세 지저분하게 변합니다. 말라버린 가지와 이파리를 잘라내고, 지저분한 화분을 닦아내고, 분갈이도 해야 합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물도 주고 바람도 쐬게 하고 일광욕도 시켜줬더니 화분마다 잎사귀의 초록빛이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욕심이 생겨서 자그마한 히아신스 한 뿌리를 사서 거실 한쪽에 놓았더니 곧바로 꽃이 피어 향기가 제법 가득합니다. 작은 화분의 꽃 하나가 집안 전체를 밝게 만드는 것을 보고 크리스천도 사회에서 이와 같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날씨가 풀리니 생각도 풀리고 마음도 풀리는 것 같습니다. 희망이 없어보였던 한국 사회에서 희망의 씨앗을 봅니다. 춥지 않은 겨울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경제가 얼어붙다보니 몸보다 마음이 더 한기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기다리던 봄도 왔으니, 얼어붙었던 냇물이 풀리듯 경제도 술술 풀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무시무시한 추위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해도 어쨌든 견뎌내면 봄소식을 듣듯이, 지금은 당장 어렵고 힘들더라도 믿음과 소망을 갖고 기도하고 인내하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좋은 소식이 가득한 세상이 올 것입니다. 그 ‘언젠가’를 앞당기는데 크리스천들이 앞장섰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희망을 간직할 뿐만 아니라 희망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봄은 희망을 전하는 크리스천들이 더욱 분주해지는 계절입니다.

나신하 기자(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