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의 증거, 복음 전파

초대교회 성도들의 목숨 건 복음전파 로마 변화시켜
인간의 연약함 도우시는 성령님 의지해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게하심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힌 우리를 건져내셨다. 또한 우리를 천국백성,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제자로 삼아주셨다. 3일 후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말씀하시고 승천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는 복음에 증인으로 살아야 한다. 여기서 증인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마르투스인데 이 말의 의미는 바로 순교자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목숨 내놓고 복음을 전했다. 당시 로마는 기독교인이 증가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성도들을 탄압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핍박을 받으며 로마원형경기장에 끌려가서 짐승의 밥이 됐다. 혹은 온 몸이 찢겨 죽거나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며 그렇게 고난을 받으며 순교했다. 하지만 결코 그들은 믿음을 버리지 아니하고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 가운데 주님의 부르심에 응했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한 부활의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죽음의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35절에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말씀한다. 그렇게 흘린 그들의 순교의 피로 말미암아 로마는 결국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에 이르러 핍박이 멈추고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됐다.
여수에는 30만 인구 가운데 10만 명이 크리스천이다.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예수를 믿는 것이다. 여수 주민들은 “여수는 손양원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께서 순교의 피를 흘린 곳이다. 순교의 성지이기 때문에 여수가 지금처럼 복음화 됐다”고 말한다. 지금 여수의 크리스천들은 엑스포를 치르고 나면 인구가 약 10만 명 늘게 되는데 그 40만 인구 가운데 한 20만이 크리스천이 되는 꿈을 꾸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복음의 증인으로 헌신하는 신앙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우리나라도 토마스 선교사가 흘린 순교의 피가 지금 1200만 크리스천의 한국교회가 되는 토양이 됐다. 하지만 복음의 증인으로 헌신하는 신앙의 삶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우리가 직접 복음을 전하다보면 여러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비롯해 개인의 내성적인 성격 탓에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을 못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 낙심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 반동안 옆에서 말씀을 듣고 기적을 직접 보고 체험했지만 예수님이 로마 병사에 붙들려 십자가를 지실 때 아무도 곁에 있지 않았다. 심지어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저주했다. 그랬던 제자들이 사도행전에 쓰인 대로 수천명, 수만명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 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복음을 전하러 다니지 않았다. 그들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며 주님이 주시겠다고 한 성령님을 기다렸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그들이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의 불이 떨어지자 그들은 성령의 인도함에 따라 방언으로 말하고 천하 각국에서 예루살렘을 찾아온 유대인들에게 큰 소리로 복음을 전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자 현장에 있던 3000명의 유대인들이 침례를 받았고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을 더해주셨다(행 2:41∼47)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연약함이다. 예수님 곁에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곁에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뿔뿔이 도망가거나 다락방에 숨어 있었다. 로마서 8장 26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한다. 성령님은 연약한 우리를 도우신다. 우리가 복음의 증인으로 헌신할 수 있도록 도우러 오신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