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 목사 희생·사랑·용서 전하고 싶다”

암 투병하면서 작곡한 ‘오페라 손양원’ 8일 막 올려
‘지금까지 지내온 것’ 등 수 많은 찬송가 작곡
해방 후 ‘산골짝에 다람쥐’ 등 만든 최초의 동요 작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 ‘어서 돌아오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등 주옥같은 찬송가를 작곡한 박재훈 목사. 90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8일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일대기를 다룬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박 목사는 이날 “하나님의 은혜로 작품을 완성해 공연하게 돼 기쁘다. 한국교회에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이 많이 나오길 간구하는 심정으로 작품에 매달렸다”고 밝히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박재훈 목사가 작곡한 ‘오페라 손양원’은 모두 2막으로 악보만 150쪽에 달한다.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 180여 명의 오페라단 단원들이 출연했다. 박 목사가 손양원 목사 일대기를 오페라로 다루겠다는 꿈을 갖된 것은 2004년도부터다. 교회 세미나를 위해 여수의 애양원을 방문한 때였다.

 “한센인 시설 애양원과 손양원 목사 기념관을 둘러보다 발가락이 썩어 떨어진 한센병 환자의 발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아내는 손 목사의 그림을 보았어요. 전 그 앞에 쓰러져 울었습니다. 아, 예수님이 여기 살았계셨구나…”
 그래서 박 목사는 한 작가에게 가사를 받아 곡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2년간 겨우 1막을 쓰다 찢어버렸다. 애써야 겨우 나오는 가사와 곡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음해인 2005년 전립선과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두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완치는 어려웠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박 목사는 작사가를 찾았다. 40년 전 그의 첫 창작 오페라 ‘에스더’의 작사가인 김희보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며칠 뒤 1막 첫 부분인 애양원 한센인들의 기도 합창 부분 가사가 팩스로 들어왔다.
 ‘주님 우리 육체가 병들었습니다. 영혼이 병들었습니다. 겨레가 병들었습니다…’

 박 목사는 가사를 본 순간 가슴이 콱 막히고 목이 메었다고 한다. 그리고 엎드려 기도하던 그에게 리듬과 하모니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2막 20곡으로 구성된 오페라가 완성된 것이다. 9년간 목숨을 건 긴긴 작업이었다. 
 박 목사는 “내 몸속 암세포 하나하나가 음표가 되어 세상에 나왔다”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박 목사는 “이 오페라는 주님이 쓰신 것”이라고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었다.

 1922년 강원도 김화에서 태어난 박재훈 목사는 한국 최초의 동요 작가이자 대부다. 그가 1947년 등사기로 갱지를 밀어 만든 ‘일맥(一麥) 동요집’은 해방 후 최초의 동요집이 됐다. 음악 교사였던 박 목사는 일제 때 일본에서 1년 정도 음악 수업을 받고 바로 학교로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쳤다. 해방 직후 어린 제자들이 일본 군가만 부르자 안타까운 마음에 사흘 동안 동시에 곡을 붙여 50곡을 완성했다. 박 목사가 당시 작곡한 동요 중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셔요’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다람쥐’ ‘송이 송이 눈꽃송이’ 등은 아직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널리 불려지고 있다.

 찬송가는 70년전인 1942년부터 쓰기 시작해 1년 뒤 ‘어서 돌아오오’를 완성했다. 그리고 6·25 때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눈을 들어 하늘 보라’를 작곡했다. 실제로 당시에 만든 곡의 가사에는 대부분 민족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하나님께 고하고 의지하려는 모습을 쉽게 느낄수 있었다. 특히 ‘눈을 들어 …’는 울산중 교사였던 석진영 여사가 박 목사에게 편지지 가득 노랫말을 보내와서 그 글에 곡을 붙여 완성된 찬송가였다.

 “당시 부산은 여기저기서 몰려온 피란민들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석 선생은 이렇게 어지러울 때 성도들이 세상 가운데서 빛을 나타내고 탄식하는 이들에게 신앙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그 느낌대로 곡을 썼던 것입니다”
 박 목사가 평생 음악활동을 하면서 작곡한 찬송가는 무려 150여 곡이나 된다. 이 가운데 4곡이 현재 한국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에 수록돼 있다. ‘어서 돌아오오’를 비롯해 ‘눈을 들어 하늘 보라’(52년) ‘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67년) ‘지금까지 지내온 것’(67년)이 바로 그것이다.

 또 박 목사는 오페라에도 심혈을 쏟았다. 1970년 한양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3막의 ‘에스더’를 완성해 1972년 서울시민회관에서 초연했다. 그 후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간 박 목사는 1979년 캐나다에 정착했다. 한국 기독교 초기에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난 박 목사는 독실했던 어머니의 기도에 의해 뒤늦게 목회자가 됐다. 1982년 회갑에 토론토 영락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토론토 큰빛장로교회를 개척,목회를 하다 지난 1990년 12월 은퇴했다.

 캐나다에서 목회를 하면서도 2001년 3월 오페라 유관순을 작곡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다. 그동안의 공적으로 그는 2011년 10월 5일 세계한인의 날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오페라 손양원. 이것을 작곡하는 동안 박 목사는 두 가지 암과 당뇨와 투병했고 한쪽 눈마저 잃었다. 그래도 강행해야 할 정도로 강렬한 사명감과 소망이 있었다. 그의 소망은 “한국에 손양원 목사 같이 헌신하는 목회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老)교역자의 열정이 우리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온몸으로 가르침을 전하는 박 목사가 오페라 손양원에 마치지 않고 더 나가기를 기도한다. 그의 건강과 행복을 응원한다.

 ‘오페라 손양원’은 5∼8월 2012 여수 세계박람회에 이어 전국 5대 도시에서 순회공연될 예정이다.

글·이소흔 / 사진·김용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