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이라도 산에 올라본 사람들은 압니다.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욱 위험하다는 사실을. 흔히 다리가 풀린다고 하지요? 올라갈 때처럼 욕심을 부렸다가는 어김없이 위험한 순간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올라갈 때의 몸 상태와 내려올 때의 몸 상태는 크게 다릅니다. 정신 줄을 놓았다가는 크게 다치기 쉽습니다. 산은 올라갈 때는 물론이고 내려올 때도 겸손해야 합니다.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지리산 종주에 나섰을 때의 일입니다. 나름 철저히 준비한다면서, 유명 등산화와 등산복, 등산모까지 장만했습니다. 가볍고 편한 등산배낭과 신소재로 만들었다는 보조 지팡이 2개도 챙겼습니다. 처음에는 힘이 넘쳐나다 보니 뛰어다니듯 걸어갔습니다. 급경사 오르막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일행에서 떨어져 나와 한참을 앞서 걷다가 완만한 내리막길에서 발을 헛디뎠습니다. 무엇에 홀린 듯 미끄러지면서 발목을 삐고 말았습니다. 발목이 금새 퍼렇게 변하면서 부어올랐습니다. 그 때 중간에 내려왔으면 좋았으련만, 지팡이에 의지해 절뚝이며 결국 산행을 끝까지 마쳤습니다. 다행히 뼈를 다치지는 않았지만, 완쾌되기까지 몇 달을 고생했습니다.

 처음엔 부실하고 위험한 등산로 탓을 했지만, 생각해보니 여러 번 다녀서 익숙한 길이었습니다. 몸 상태도 좋았고, 보조 장비도 좋았는데, 왜 다쳤을까 생각해보니 문제는 마음가짐에 있었습니다. 산을 우습게 본 것이지요. 익숙한 내리막길이라고 방심했던 것이 결정적 화근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산행에서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일은 거의 내리막길에서 벌어졌습니다.

 세상살이, 특히 경쟁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어떤 목표를 정하고 도전할 때는 힘이 넘치고 자신만만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신중하고 조심할 줄도 압니다. 일단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는 모든 것이 자신의 발아래 있는 듯 세상을 우습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성취한 것을 평생 끌어안고 갈 수는 없습니다. 결국은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문제는 올라갈 때의 자신감과 정상을 정복했을 때의 자만심에 빠져 있으면 어김없이 큰 환난을 당한다는 점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조심해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표에 도전할 때부터 목표 달성 이후를 생각한다면 더욱 바람직한 일이겠지요.

 어느 누구도 세상의 정상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습니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놓고 떠나야 합니다. 내려오고 싶지 않아도 결국은 내려와야 합니다. 돈도 명예도 지위도 권력도 모두 내려놓고 내려와야 합니다. 바람직한 크리스천들의 마음가짐이 이런 것이 아닐까요? 특히 남들이 부러워하는 은혜와 축복을 받았다면 더욱 겸손할 일입니다. 권력과 재력을 손에 쥔 사람들이 갖가지 불법과 비도덕적 행위를 저지르고도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나신하(KBS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