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친정 나들이 하긴 오랜만이다. 그동안 귀성표를 예매할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다행히 인터넷 상에서 고속버스 승차권을 예매한 덕분에 그리운 형제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설날 아침, 큰 오빠네 작은 아파트는 사방에서 모여든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6남매의 가족들과 큰오빠의 사위, 며느리에 어린 손주들까지 모였으니 수십 명이 모인 셈이다.

 아이들은 거실과 작은 방들을 차지하고 이 가족의 원줄기인 6남매는 안방에 모였다. 지금까지 병들거나 크게 실패한 일 없이 평범함 가운데 화목하게 살아온 남매들이다. 그냥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얼마나 좋은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집안에서 큰오빠는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다. 유머가 풍부해 자주 사람들을 웃기는 큰오빠를 아무도 어려워하지 않지만, 우리 형, 우리 오빠란 뿌리 깊은 신뢰와 사랑이 큰오빠에게 범접 못할 권위를 부여해주고 있다.
 모일 때마다 오빠들의 추억 한마당이 펼쳐지는데 나이 들수록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새록새록 피어나기 때문이리라. 무논에서 씽씽 썰매 타던 일, 한밤중에 초가집 추녀를 뒤져 참새 잡이 하던 일, 토끼 굴 앞에 솔가리 피워 토끼를 쫓던 일, 제기차기, 연날리기, 딱지치기, 닭싸움하기 등 많기도 하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함께 돌아 다녔던 남자형제들은 신이 나서 “맞아요” “그랬지요” 등 추임새를 연발한다. 다섯 명의 남자들이 개구쟁이 시절로 돌아가 놀던 이야기 속에 나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가 고명딸인데다 워낙 조용해 남자들 세계에 얼씬도 하지 않은 탓이다.

 세월이 흘러 오빠 동생들 곁에서 옛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미소가 절로 핀다. 핏줄이란 이런 것일까? 큰오빠의 성성한 은발이 눈물겹게 안타깝고 서서히 벗겨지는 동생의 이마가 안쓰럽다.

 누가 명절을 만들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명절 증후군에 시달린다며 명절을 폄하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명절은 모처럼 가족이 모여 행복을 나누는 시간이다. 이 바쁜 세상에 명절 아니면 언제 부모형제가 도란도란 모여 이야기 할 짬이나 있을까? 시댁이나 친정이 먼 지방인 경우, 차는 밀리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겨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랑을 나누고 가족이란 이름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소중한 시간이며, 우리의 아이들이 웃어른을 공경하고 친척을 알아가는 산 공부시간이기도 하다.

 여성들의 과한 노동과 종교적인 갈등이 더러 문제가 되긴 하지만 이해와 배려로 풀어내야 할 것이다. 핵가족 시대의 명절은 그런 의미에서 핏줄을 재확인시켜 주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조임생 권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