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신학ㆍ선교 > 선교열전
①데이비드 리빙스턴
꿈을 잡고 한계 뛰어넘은 개척자

 “살아서 선교를 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이미 개척한 지역이 아니라 복음의 씨앗이 한 번도 뿌려지지 않은 미개척지에 들어가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평생 자신이 가야할 길을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개척하며 나아갔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를 횡단하며 새롭게 발견한 곳을 지도에 그려 넣고 사람들에게 미지의 땅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리며 탐험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리빙스턴은 1813년 스코틀랜드 블랜타이어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차를 갖고 다니며 팔았다. 수입은 많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차를 팔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전도지를 수백장씩 나눠주는 일을 기뻐했다. 그 동네 가난한 아이들이 으레 그랬듯이 리빙스턴도 10살 남짓부터 가족의 생계를 위해 형과 함께 방적공장에서 하루 14시간씩 일주일에 엿새 동안 일을 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책을 끼고 다니며 틈만나면 읽었다. 책을 보며 과학을 좋아하게 된 리빙스턴은 신앙과 과학의 길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던 중 토머스 딕 박사가 쓴 책 한권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딕 박사의 책은 하나님이야말로 과학적인 설계자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19세의 리빙스턴은 기도를 할수록 하나님이 의료선교사의 사명을 주셨음을 굳게 확신했다. 리빙스턴은 의사가 되기 위해 직조공 급여를 모아 드디어 1836년 11월 앤더슨 초급대학에 진학했다. 그 마을에서 의대를 간 첫 번째 인물이 된 것이다. 의학 공부를 마친 후 학교 측에서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교사가 돼주길 원했다. 그러나 선교사로서의 목표가 확실했던 그는 학교의 제안을 거절하고 런던전도협회로 갔다. 런던전도협회는 서인도제도로의 파송을 제의했지만 데이비드는 이미 선교기지들이 굳건히 기반을 내린 상태인 것을 확인하고 개척선교사가 되고 싶은 포부를 밝혔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던 모팻 선교사와의 만남을 통해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 대한 꿈을 꿨다.

 그 당시에는 중앙지대는 사람이 살지 않는 거대한 황야이고 아프리카인들은 오직 해변에만 거주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모팻 선교사를 통해 내지에도 수백 수천의 마을이 있을 것이란 정보를 듣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을 꿈꿨다. 런던전도협회는 허락하지 않았다. 아프리카는 ‘백인의 무덤’이라는 별명까지 붙어있을 정도로 힘든 곳이었다. 뜻을 굽히지 않은 리빙스턴은 드디어 1841년 아프리카 쿠루만에 도착해 그누구도 들어가 보지 못한 오지만을 찾아 들어가 사람들을 치료하고 복음을 전했다. 미지의 땅은 항상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사자에게 물리기도 하고 적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목숨을 걸어야했다. 게다가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부리는 백인들과 노예무역상을 하는 아랍인들은 리빙스턴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새로운 땅으로 나아가며 어린 자녀들은 풍토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었고 부인은 뇌졸중에 걸렸다. 결국 한 아이는 태어난 지 6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개척을 멈추지 않았다. 1856년 일시 귀국했을 때는 <남아프리카 전도여행기>를 출간하고 노예사냥의 실태를 폭로하며 노예무역금지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왕립지리협회에서 금메달을 수여했을 때 그는 “저는 선교사의 신분으로서 그리스도를 위해 아프리카의 일부분을 개척하는 사명을 이행했을 따름입니다. 저는 이제 막 방패를 들고 선한싸움을 싸우러 나선 병사에 불과합니다. 아프리카인이 단 한사람도 노예가 되지 않고, 기독교의 빛 가운데 공정한 무역이 이루어지기까지 저는 결코 제가 한 일을 자랑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리빙스턴 선교사의 도전정신을 이어받아 삶의 현장에서 신앙의 불모지를 찾아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기사입력 : 2012.01.22. am 11:19 (입력)
복순희기자 (lamond@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