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사랑으로 충만했고 은혜로웠다”

신앙의 힘으로 한국인 최초 시각장애인 박사 돼
긍정적 믿음 바탕 위에 ‘신앙의 명문가’ 이뤄
췌장암 말기 진단, 장학재단에 25만 달러 기부  

 지난해 성탄절을 앞두고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장애위원(차관보급)을 지낸 강영우 박사가 지인들에게 한 통의 메일을 보냈다. 10월 초 담석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만해도 몰랐지만 추가 검진에서 췌장암이 발견, 의사로부터 한 달여 밖에 더 살지 못할 거라는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강영우 박사 본인도 큰 충격이었지만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하나님의 축복으로 참으로 복되고 감사한 한평생을 살아왔다”고 고백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는 이메일에서 “앞으로 저에게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 의료진의 의견”이라며 “저로 인해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했다.

 부모와 누나를 잃고 실명의 고통, 고아가 됐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고, 실명을 통해 하나님은 상상할 수도 없는 역사들을 이뤄내셨다며 자신의 장애를 감사하기도 했다.

 강 박사는 “늘 여러분 곁에서 함께 하며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여러분으로 인해 제 삶이 사랑으로 더욱 충만했고, 은혜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끝을 맺었다.

 말기 췌장암 진단 후 버지니아 주 자택에서 요양 중인 강영우 박사가 얼마 전에는 장학재단에 25만달러(약 2억9000만원)를 기부해 잔잔한 감동을 전했다. 

 1972년 국제 로터리재단 장학생으로 뽑혀 피츠버그대에서 유학하고 한국 최초 미국 시각장애인 박사가 된 강영우 박사는 이번에 국제로터리재단에 평화장학금을 기부하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없애고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하고 싶었다. 재단에는 우리 기부금이 이왕이면 평화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국 학생들을 위해 사용했으면 한다는 뜻도 전달했다”고 말했다.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를 위해 헌신인 강영우 박사의 삶이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천막교회에서 부르짖다

 아버지를 여읜 강영우 박사는 중학교 시절 축구공에 맞은 것이 원인이 돼 실명했다. 아들이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말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강 박사는 불광동 천막교회에 가면 조용기 전도사가 있는데 많은 병자들이 기도받고 고침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물어물어 불광동 비탈길을 올라간 강 박사는 허름한 천막교회를 발견했고, 거기서 조용기 전도사를 만났다. 그는 눈물로 눈을 고쳐달라고 기도하며 매일 교회를 찾았다. 그러던 중 학업을 중단하고 생계 유지를 위해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누나마저 과로사로 잃었다.

 “13살, 9살 어린 두 동생과 삶이 막막했어요. 하나님께 눈을 고쳐달라고, 눈만 고쳐주시면 내가 공장에 가서 일해 두 동생을 먹여살릴 수 있으니까 눈만 뜨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죠”
 그러나 그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다. 강 박사는 세월이 흘러 생각했을 때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지만 그때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은 것이 감사하다”고 간증한 적이 있다. 눈을 떴다면, 그리고 공장에 나가 돈을 벌고 두 동생과 생계를 이어갔다면 당시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그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강영우 박사는 그 후 맹인재활원으로, 9살 여동생은 보육원으로, 13살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흩어져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했다. 장애에 대한 상처가 깊었던 강 박사는 결국 신앙에 대한 갈등이 생겼다. 그때 그에게 도전을 준 인물은 사도 바울. 강 박사는 “바울을 보면서 의인도 육신의 장애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 역시 죄의 벌로 고통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고난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면서 고난과 역경이 기회와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생각이 달라지자 찾아온 축복  

 생각이 바뀌자 강영우 박사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는 “하나님이 나에게 긍휼한 마음을 가진 천사들을 보내주셨다”고 했다. 병원 사회사업가의 도움으로 서울맹학교에서 다시 중학교 과정을 밟게 된 강 박사는 걸스카우트 지도자 훈련을 받는 학생들의 후원으로 학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때 만난 사람이 바로 아내 석은옥 여사다.

 1961년 당시 숙명여대 1학년이었던 석은옥 역사는 걸스카우트 지도자 훈련을 받던 중 강영우 박사를 알게 돼 1년 동안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그리고 중학생이었던 강영우 박사와의 나이가 5∼6년 차이일거라는 생각에 누나를 자청하고 6년간 누나의 역할을 감당했다.

 하지만 강영우 박사는 시력을 잃고 2년 동안 방황하고,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2년 동안 교회를 좇아다니고, 1년 동안 점자를 배우다보니 5년 늦게 학교를 들어가 석은옥 여사보다 1살 밖에 어리지 않았다.

 강영우 박사는 비록 시력을 잃었지만 긍정적인 신앙의 힘으로 내일에 대한 꿈을 가지고 학업에 매진했다. 그리고 장애를 극복하고 연세대에 입학, 1972년에는 연세대 문과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했다. 꿈이 낳은 결과였다.

나는 그대의 지팡이, 그대는 나의 등대

 대학에 들어간 강영우 박사는 누나로 자신을 돌봐준 석은옥 여사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제시하며 청혼한다. 본명인 석경숙 대신 돌밭을 걷는 어두운 ‘석’의 시대 10년이 지나면 10년의 ‘은’의 시대가 오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축복받는 ‘옥’의 시대가 온다며 ‘석은옥’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인생의 반려자가 돼 달라고 말했다.

 석은옥 여사는 강영우 박사의 말에 감동을 받고 서로에게 지팡이와 등대가 될 것을 약속했다. 3년의 연애를 거쳐 두 사람은 강 박사가 대학을 졸업한 후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석 여사는 1976년 강 박사가 피츠버그대학교에서 한국 최초미국 시각장애인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첫 만남 후 40년이 흘러 권력의 상징인 백악관에 입성하는 날도 남편의 지팡이가 돼 변함없이 그 옆을 지켰다.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의 인준을 받는 고위공직자 중 한 명으로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를 지낸 강영우 박사는 2006년에는 케네디, 레이건, 클린턴 등의 미국 대통령과 록펠러, UN사무총장 코피 아난과 함께 127인의 위인으로 선정돼 루스벨트 홍보센터 강당의 기념의자에 이름이 기록되기도 했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강영우 박사의 인생 이야기는 로버츠 슐러 목사와 노먼 빈센트 필 박사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다시 한번 긍정적 신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증명했다.

신앙교육으로 일군 믿음의 가문

 부시 대통령과 강영우 박사의 아들을 가르친 미국 최고 명문고 필립스 아카데미 토마스 라이언 교사는 강영우 박사를 일컬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뿐 아니라 당대 명문가를 이뤘다”고 말했다.
 강영우 박사의 두 아들은 모두 필립스 아카데미를 거쳐 큰 아들 진석은 하버드대를 나와 의학박사가 됐고, 둘째 진영(미국명 크리스토퍼)은 예일대를 거쳐 상원 민주당 지도부 수석 보좌관, 2009년에는 백악관 입법 관련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받았다. 현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임 법률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며느리들도 의사와 변호사로, 강영우 박사 집안에는 박사가 5명이다.

 강영우 박사 내외는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성경 잠언을 읽어주면서 신앙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알려주면서 “학업의 목적은 내가 아닌 남에게 봉사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말씀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버지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장애를 극복한 아버지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자랐다. 큰 아들 진석은 하버드대를 지원할 때 쓴 에세이에서 “아버지는 육신의 빛은 잃었지만 세상과 미래를 보고 인생을 보는 환한 비전을 가졌기 때문에 눈뜬 내가 아버지를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를 선명하게 안내하셨다. 어둠 속에서도 성경을 읽어주셨기 때문에 나는 쉽게 잠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고 오늘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을 갖게 됐다. 감사하다”고 써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3살 때 “네가 커서 아버지의 눈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그 말을 비전 삼아 안과의사에 대한 꿈을 갖게 된 진석은 결국 안과 전문의가 돼 세계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강영우 박사는 “이 모든 것은 고난과 역경에 대한 생각을 바꿨을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축복”이라며 자녀교육에 있어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위대한 그리스도의 증인,  강·영·우

 조용기 목사는 천막교회 시절 자신을 찾아왔던 강영우 박사를 기억하며 “강 박사는 긍정적 믿음의 소유자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한 위대한 그리스도의 증인이다”라고 말했다.

 보잘 것 없던 시각 장애인 고아 강영우가 세계적인 인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꿈과 비전을 주셨기 때문이다. 비천한 천막교회에서 조용기 전도사의 기도를 받으며 눈 떠지기만 소원했던 그는, 긍정적 신앙이 아니었더라면 고난이 저주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난을 기회로 여기고 믿음으로 나아가자 태도가 바뀌고 삶이 변했다며 우리에게 하나님만 의지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기독교의 가르침이 위대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준 그리스도의 증인, 그리고 나눔을 통해 우리의 사명이 ‘이웃 사랑’에 있음을 일깨워준 ‘강영우’라는 이름은 언제나 기억돼 우리 가슴에 따뜻한 사랑으로 남을 것이다. 

 <국민일보 사진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