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안내 메일이 슬슬 날아오고 있습니다. 직장, 거래처, 동창회 등 살아오면서 직간접으로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대화를 나누고 또 끼리끼리 몰려가 노래도 부르자고 합니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즐겁기도 하지만, 오고가는 술잔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합니다.

 모임이 끝나는 순간까지 술은 스토커처럼 따라 붙습니다. 평소 엄숙하고 빈틈이 없었던 사람들도 송년회 술자리에서만큼은 조금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도 흠이 되지 않습니다. 이때만큼은 남들의 실수에 여유로워집니다. 사람이 술을 먹다가, 술이 술을 먹다가,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기도 합니다. 술에 취해 사고를 친 사람들로 경찰서가 북적이기도 합니다.

 술에 의존하는 송년회의 후유증은 심각합니다. 이튿날 아침이면 사무실 곳곳에서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제 몇 차까지 달렸어’ ‘아무개 씨 술 잘 하던데’ ‘폭탄주 열 몇 잔을 마셨어’ 등의 말을 자랑스럽게 주고받기도 합니다. 아예 출근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른바 ‘전사자’의 칭호가 붙습니다. 봉사와 문화 활동 등으로 행복한 송년 모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는 있지만, 아직도 술독에 빠져 정신 줄을 놓는 송년회는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때 송년회를 망년회(忘年會)라고 불렀습니다. 지난 1년을 그냥 잊고 싶다는 마음이 반영된 것입니다. 이제는 송년회라는 이름이 더 많이 쓰이지만, 모든 것을 잊고 싶어하는 마음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만큼 지나온 일상이 힘들고 모질었다는 뜻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술 먹는 송년회를 선호한다는 점입니다. 젊은이들과 여성들은 대부분 술에 취해 흥청대는 모임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술 송년회’는 사라지지 않으니 희한한 일입니다. 싫다는 사람이 많은데 없어지지 않는 관행을 깨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송년회는 힘들게 또는 보람차게 살아온 지난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희망의 자리여야 합니다. 바로 크리스천들이 모이는 송년회 모습입니다. 봉사와 문화활동이 아니라 회식 형태의 송년회가 되더라도 술보다는 위로와 칭찬을 나누는 모임, 고통스러운 기억을 회상하며 자책하기보다는 희망을 나누는 모임이 됐으면 합니다. 회사와 기관, 단체마다 크리스천이 최소한 한두명씩은 있습니다. 송년회를 포함한 한해의 마무리가 좀 더 아름다운 방향으로 이뤄지도록 크리스천들이 조금 더 목소리를 내고 노력했으면 합니다.

나신하 기자(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