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며칠 새 기온이 뚝 떨어졌다. 여의도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 차가운 밤바람에 옷깃을 추스르며 발길을 재촉했다. 주차장에 거의 다 왔을 무렵에 어둔 밤거리에 40대로 보이는 여성이 가방을 가슴에 두른 채 서성이고 있었다. 난 ‘이 밤중에도 주차장을 관리하나’ 하는 생각이 들며 참 추운 날씨에 고생이 많다는 안쓰러움이 들었다. 그런데 그 여성이 갑자기 내게 다가와 ‘노래방 찾으세요’라고 물었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그냥 지나쳤는데, 왠지 마음은 무거웠다.

 미국과 유럽의 반월가 시위가 한국에도 상륙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에서는 호응도 적고 성격도 다르다며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아무리 적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약자들의 표현으로 바라봐야 한다. 사람이 비 오는 거리에 나서고, 나이든 여성이 추운 밤거리를 서성이며 낯선 남자에게 말을 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렇게 할 때는 억울하고 분하고 절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따져보면 궁극적으로 정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번영은 정치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의 번영이라는 면만 본다면 일단 안정적이고 추진력 있는 리더십이 좋다. 중국의 번영은 안정적인 정치 리더십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전통적 선진국들의 경제 위기는 무기력한 정치리더십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훌륭한 리더가 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리더가 되는 걸 바라고 있지만 막상 자신이 리더가 되어보면 사람을 다룬다는 게 얼마가 골치 아픈 일인가를 알게 된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짐 중의 하나는 비정규직과 실업자들이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기업주들이 사람 쓰는 걸 기피하기 때문이다. 기업주들이 어떡하든 골치 아픈 노조 만들고 4대 보험 다 들어줘야 하는 노동자들을 안 뽑으려고 한다. 이런 경향이 오랫동안 누적되다 보니 한국 사회에 비정규직, 실업자들이 넘쳐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 기업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은 사람 뽑는 걸 두려워하지 않은 회사들은 하나같이 크게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즉 기업주의 리더십이 자신감 있고, 노동자들의 신바람을 불러 일으킬 만한 재주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리더십으로 얘기를 돌리면 국가의 번영만을 따진다면 중국의 집단 지도체제와 러시아 푸틴 같은 리더십이 용인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리더십은 집단적으로는 선이지만 약자들의 많은 희생을 초래할 수 있는 약점을 안고 있다. 그렇다고 힘 있는 부자들, 금융가들의 탐욕들은 통제하지 못하고 약자들을 돕기 위한 강력한 정책을 생산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하고 무기력한 민주적 리더십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상적인 정치리더십이 되려면 사회적 약자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끌어안는 정책을 즉각적으로 실천하고 힘있는 자들은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현실은 딜레마의 도가니이기 때문이다. 이 모순의 연속인 현실을 어떻게 시원하게 풀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비 오는 거리에 나선 사람들, 생계를 위해 밤거리를 나선 여성이 바로 우리 곁의 ‘예수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그 연약한 약자가 나태하고 교만하고 모순에 찬 우리 사회를 구원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정치인들의 마음에 깃들기를 기원해본다.

이상용(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