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에 서 있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곁을 지나갔다. 유모차를 미는 아기 엄마, 책가방을 맨 학생, 개를 끌고 산책 중인 할아버지…. 그 때 아들의 손을 잡고 가는 한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와 아들이란 걸 금세 알 수 있었던 건 두 사람이 붕어빵처럼 닮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손에 제 손을 맡기고 입을 헤 벌린 채 뒤뚱거리며 걷는 그 아이는 여남은 살쯤 돼 보였는데 한눈에도 다운증후군 환자였다. 아이 아버지는 다정하게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무언가를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중이고, 아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장애인 아들을 품고 삶의 지난한 여정을 걷는 아버지의 마음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아이가 태어났을 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으리라. 아이가 잘 자라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될 것도 꿈꾸었을 것이다. 모든 부모에게 자기 자식은 특별한 법이니까.

 아이가 옹알이를 하고 방바닥을 기기 시작하고, 뒤집고 걸음마를 할 때마다 아이를 향한 찬란한 꿈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병원으로 달려가 막연한 두려움이 사실인 것을 확인했을 때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자식 또래의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버지의 가슴은 한없이 먹먹했을 것이다. 눈물도 수없이 삼켰을 것이다. 마침내 아버지는 생인손 같은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얼마 전 TV에서 방영한 실화가 생각났다. 구두 수선가게를 운영하는 그 아저씨는 다운증후군 여동생을 보살피느라 결혼까지 포기했다. 여동생의 실제 나이는 쉰 고개가 넘어보였지만 정신 연령이 겨우 서너 살밖에 되지 않아 이부자리에 실례를 할 때도 많았다. 그런 치다꺼리를 수십 년이나 하면서도 그 오빠는 자신의 삶이 불행하기는 커녕 여동생이 오히려 삶의 낙이라고 했다. 오빠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늙은 여동생이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하다니 정말 못 말리는 사랑이다.

 세상엔 자신의 행복을 위해 가족까지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생에 걸림돌이 되는 자식을 버리는 비정한 부모와 노부모를 외면하는 자식들의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별로 생소하지 않는 이야기가 돼 버렸다. 그래서일까? 못 말리는 사랑에 빠진 이 분들의 삶이 뜨겁게 심금을 울린다.

 불행한 현실도 넉넉히 품고 받아들일 줄 아는 분들이 있어 세상은 아직 아름답다. 장애인 아들과 아버지가 손을 꼭 잡고 지나간 길에 따뜻한 사랑이 밀물지고 있었다.

조임생 권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