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환승로에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한 분이 앉아있었다. 굽은 허리 때문일까? 할머니 몸이 작은 아이처럼 보였다. 말은 없어도 도움을 호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지나가기가 미안해서 천 원 한 장을 드리고 돌아서려는데 껌을 한통 내미셨다. 그제야 할머니 앞에 놓인 껌 몇 통이 보였다.
괜찮다고 했지만 재차 껌을 내미시는 게 아닌가.

 또 한 번 사양했더니 할머니의 미간에 주름살이 모아졌다. 기어코 껌을 주려는 단호함이 보였다. 아하, 그제야 할머니의 의지가 느껴졌다. 할머니는 공짜로 돈을 받기 싫으신 것이다. 당당히 상품을 팔고 그 이윤을 남기는 장사를 하고 계신 것이었다. 단순히 남의 동정을 구하는 거지와의 확연한 차별을 요구하신 것이다.

 껌 한 통을 받고 돌아오는데 이런저런 생각들이 교차했다. 한편으론 저 나이에 저렇게 꼿꼿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안쓰러움과 한편으론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자주 의지하려드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삶의 자세라는 것이다. 사실 요즘은 책임의식이 희박하고 받는 데만 익숙한 사람들이 참 많다. 자식들이 귀한 나머지 받들어 키우다보니 독립정신이 약해진 탓이리라. 온실에서 키우는 식물이나 과도한 보호를 받고 자란 아이는 고난을 극복해내기가 참 어렵다. 그런 면에서 빈 손 들고 일어나 자수성가한 사람의 이야기는 영웅담처럼 들린다. 고난을 극복해 낸 그들의 의지는 강철처럼 강하고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물론 과정이 정의로울 때 이야기다.

 어느 청년이 맞선을 보는 자리에서 여자에게 물었단다. 연봉이 얼마냐고. 물론 요즘은 맞벌이를 해야 할 만큼 혼자 벌어서는 살기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의식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의 본질보다 돈의 가치가 앞서는데 행복이 피어날 순 없을 것이다. 서로 사랑한다면 한 쪽에만 무거운 생활의 짐을 지우고 혼자 편안하지 않을 것이며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은 고난이 아니라 행복을 만들어가는 여정이다. 처음 맞선을 보는 자리에서 연봉이 얼마냐고 묻는 남자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는 아가씨를 보며 이 세태의 현주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러해도 연봉을 계산하고 결혼을 저울질하는 것은 정말 씁쓸한 느낌이다. 돈은 없지만 반드시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막무가내식 구애가 오히려 더 신선하게 들린다.
 지하철 환승로에 앉아 껌 몇 통을 팔면서도 자존심을 놓지 않는 할머니의 의지가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됐으면 좋겠다.

 조임생 권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