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좋고 산 좋은 곳은 사람 잔치이며, 이때를 기다린 상인들은 바가지를 씌우기 십상이고, 함께 여행에 오른 사람끼리 길에서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등 집 나가면 고생이라지요. 그럼에도 우리네 삶에서 여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오죽하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단 한 장만을 읽을 뿐이다”라며 일상에서의 ‘떠남’을 종용했을까요.

 올해 저는 가정에 ‘파란’을 일으키는 여행을 좀 다녀왔습니다. 파란의 요인은 이렇습니다. ‘여덟 살 그리고 세 살 된 아들 둘, 그리고 가장 걱정되는 우리집 큰 아들 남편을 모두 두고 혼자 간다. 일정은 9박 10일이며 휴대폰도 잠시 여름 휴가를 줄 겸 두고 간다’ 이런 제 여행 계획을 밝힐 때 저희 가족의 표정은 그야말로 ‘10초간 정지’ 상태였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아이들은 ‘저 사람이 과연 우리 엄마?’하는 표정으로 저를 의심했습니다. 그럼에도 떠나야 했습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분명 또 다른 깨달음을 줄 것이기 때문이지요. 일 off, 가사 off, 그리고 이 둘을 완전하게 off 시켜줄 휴대폰 off까지. 눈물나게 좋을 줄 알았는데 기차 칸에서 사실 눈물나게 슬펐습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 멋지긴 한데 역시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9박 10일간의 단기 선교. 허물어져가는 교회 난간에 무시무시한 거미줄을 제거하고, 고약한 냄새가 심장까지 찌르는 듯한 화장실을 청소하며 5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5일은 잡상인 보듯 저와의 대화를 꺼리는 사람에게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가 하나님의 사랑을,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데 보냈습니다. 70대 노인 2명 결신, 그리고 청소를 잘하지 못하는 저를 대신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빛을 내주셔서 겨우 말끔해진 교회…. 많은 대가를 치르고 떠난 여행길에서 엄청난 결실을 맺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열매는 소박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단기 선교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부터입니다. 사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져 나가듯 제 눈은 열렸습니다. 많은 세월을 산 것은 아니지만, 직업 탓에 제법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깊이 있는 인생관을 가졌다고 믿던 제가 이제야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이전에 봤던 것들은 다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삶에서 혼탁한 것들이 걷혀지고, 새로운 것들로 다시 채워지는 느낌입니다. 생에서 가졌던 무수히 많은 물음표들이 느낌표로 바뀌는 경험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인생의 진한 방점이 여행이라고 했다면, 저는 거기다 조금 더 보태 어렵게 떠나는 여행일수록 풀 빌라와 쪽빛 바다가 펼쳐지는 동남아보다 허름하고 황량한 선교지로 향하라고 귀띔해주고 싶습니다.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곳에서 얻는 것은 더 많은 법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많은 비밀과 법칙 그리고 행복을 숨기고 있는지, 올 여름이 가기 전 이번에는 당신의 여행 후일담이 듣고 싶습니다.

황여정(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