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온 뇌성마비의 위기, 믿음으로 승리
기도하는 대로 응답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아내 백혜원 집사와 나는 명문대 출신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외국계은행에서 또 아내는 중학교 교사로 일하며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됐는데 교회에 나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아간 나는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됐다. 한달만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게 됐고, 믿음이 자라면서 조용기 목사님의 주일설교 뿐 아니라 온갖 강해설교 테이프를 들으며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은 매년 승진하도록 인도하셨고 내 능력보다 언제나 더 큰 축복을 주셨다.
어려서부터 외교관이 꿈이었던 나는 교회에 출석하면서 해외주재원으로 나가기를 기도했다. 당시 33세의 나이에 은행 차장으로 근무했던 것도 감사한데, 폴란드 주재원으로 가게 됐고 소매금융을 총괄하는 본부장이 됐다. 폴란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된 나는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 더 열심히 섬기겠다고 다짐했지만 조금씩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임신 6개월된 아내가 갑자기 하혈을 했다. 병원에서는 2∼3일이면 퇴원할 수 있다고 했지만 처음 진단과 달리 아기를 낳을 때까지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임신 8개월째. 결국 둘째 아이는 미숙아로 세상에 나왔다. 집에 온지 3주 정도 지난 어느 날 아이의 목에 심한 근육 뭉침 현상이 발견됐다. 혹시나 해서 검사를 해보니 담당의사가 ‘치토메갈로’ 바이러스라는 생전 들어보지 못한 바이러스에 감염이 됐다고 했다. 잘못 진행될 경우 뇌성마비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했다. 청천병력과도 같은 얘기를 듣고 입원실로 갔는데 병실에 함께 있는 아이들은 내가 보기에도 거의 뇌성마비 같아서 아내와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슬픔으로 마음이 무너졌다.
눈 뜨고 있는 시간은 잠시도 쉬지 않고 기도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비로소 이 모든 것이 ‘나의 죄’로 인해 생긴 일임을 깨닫게 하셨다. 나는 눈물의 회개를 하고 아침금식을 시작했다.
하루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반드시 고쳐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왔다. 많은 성도들 앞에서 간증하는 모습도 환상으로 보게 됐다. 그날 이후 매일 밤 컴퓨터에 앉아 울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모든 내용을 컴퓨터에 저장했다.
아침 금식이 50일쯤 되던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바이러스 감염은 일단 치료됐지만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입원 두달 만에 퇴원하게 됐다. 장애를 예방하기 위해 3개월간 물리치료를 받았는데 치료의 강도가 너무 심해 아이는 울다가 실신하기를 반복했다. 하나님께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아내와 나는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 찾았다.
태어난 지 1년이 가까워 올 무렵 1년 여 동안의 시련과 연단을 지나 아이는 완쾌됐다. 금식기도 중에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성도들에게 간증했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너무 감사해 봉사도 열심히 했다.
2005년 11월 1일부터는 ‘매일의 양식(Daily Bread)’이라는 이메일을 발송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말씀과 내가 만난 하나님을 문서로 전하는 문서사역을 시작했다. 사역을 시작한 지 5년 9개월이 지난 지금 1000명이 넘는 직원과 직원의 친구들에게 1380회가 넘게 메일을 보내고 있다.
현재 씨티금융판매서비스(주)부대표로 재직중인 나는 직장신우회를 세워 매주 수요일 직원들과 예배 드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54명을 교회로 등록시켜 6월에 열린 우리교회 2/4분기 전도시상식에서 전도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나는 앞으로도 영혼구원과 복음전파를 소명으로 여기고 오직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갈 것이다. 날마다 풍성한 은혜를 주시고 넘치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