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네 가족은 집안 사정으로 자기 집을 세주고 남의 집 반 지하방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이사 간지 얼마 안 돼 물난리를 만났다. 연일 쏟아지는 폭우로 갑자기 물이 방 안 천장까지 차오르는 바람에 장롱 위에 올려둔 학원 가방 외엔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단다. 그 이튿날 물을 퍼내다가 학원에 갔는데 사정을 모르는 선생님은 숙제를 안 해왔다고 야단을 치셨다. 평소 모범생인 이 아이는 갑자기 자신의 처지에 대한 연민과 반항심이 솟구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전 처음 선생님께 막 대들었다면서 그 선생님이 참 황당했을 거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제가 잘못했지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수업을 하다가 말고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한창 예민한 나이에 힘든 삶의 현장에 내몰린 아이의 마음이 저리도록 느껴졌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어. 그래도 산사태를 당해 집이 흙더미에 파묻힌 사람보다는 훨씬 낫지 않니?” “그건 그렇죠” 아이가 픽 웃었다.

 보통 사람에겐 남이 당한 큰 사고보다 자신이 당한 작은 고난의 무게가 훨씬 현실적이지만 크든 작든 고난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각의 전환인 것 같다. 이왕 당하는 고난인데 속상해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 고난의 무게가 훨씬 크게 늘어난다. 나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사람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거나 그래도 이 정도이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 고난의 무게는 훨씬 가벼워 질 것이다.

 이 세상 누가 행복하기만 할까? 누구에게나 고난의 계절은 다가오고 지나간다. 다만 그 무게가 다를 뿐이다. 내가 아는 가스펠 가수 한 분은 너무 고와서 온실 속에서 자란 분 같았다. 그런데도 노래가 심금을 울린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분 역시 말할 수 없는 고난의 터널을 지나왔다는 고백을 했다. 그만큼 되기까지 남모르는 아픔을 견디며 이긴 것이다. 그 분도 고난을 당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게 됐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체험하게 됐다고 했다.

 이왕 당하는 고난이라서가 아니다. 눈보라치는 겨울이 지나면 따스한 봄이 오듯 고난의 계절 뒤엔 축복과 은총의 계절이 따라오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 당하는 고난의 무게도 훨씬 덜어질 것이고 가벼워진다. 생각에 따라 고난의 무게는 달라지는 것이다.

조임생 권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