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같은 동네, 두어 집 건너 동갑내기 외사촌이 살았다. 우리는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를 다녔지만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 부모님이 한 때 별거하신 바람에 외가와 친가의 관계가 서먹해졌기 때문이다. 가정을 돌보지 못하셨지만 내겐 아버지였으므로 아버지에 대한 외가의 지나친 비난은 깊은 상처로 남았다.

 세월이 흘러 외사촌도 나도 결혼했는데 풍문에 간혹 소식만 들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들려온 소식은 그 외사촌이 말기 암 환자인데다 남편까지 중환자라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내 처신이 죄스럽고 갈등이 생겼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길이고 가슴에서 손으로 내려오는 길이라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나는 신앙인이 아닌가? 말씀을 들었으면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걸 알면서도 나는 머리의 신앙에 머물러있던 미성숙한 신앙인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간신히 집을 알아내 찾아갔더니 외사촌은 피골이 상접한데다 기침이 너무 심해 자리에 눕지도 편안히 앉지도 못하는 형국이었다. 항암 치료 중 폐를 다쳤는데 눕기만 하면 발작적인 기침을 하는 바람에 허리를 구부린 채 앉은 자세로 며칠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그제야 안타까운 심정이 동하고 눈물이 났다. 끌어안고 기도를 하는데 그동안의 무관심에 대한 회개와 함께 부디 치료해 주십사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외사촌도 내 손을 꼭 잡았다. 신앙고백도 따라 했다.

 그날 밤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외사촌은 오랜만에 잠을 푹 잘 수 있었다며 기도 덕분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외사촌을 사랑하셔서 마른 막대기 같은 나도 사용하시는구나 싶었다.

 시간 날 때마다 집으로 찾아갔는데 회복할 듯하다가 결국 외사촌은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일까? 돌아가기 전날 밤 보고 싶다며 아들을 시켜 나를 불렀다. 한밤중에 부랴부랴 찾아갔더니 병세는 더욱 위중해 보였다. 그녀는 시집의 유력한 친척도 불러 사랑하는 아들을 돌봐주십사는 부탁도 했다.

 늦었지만 그 때라도 찾아간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나 싶다. 적조한 상태로 그냥 떠나보냈더라면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연약한 나를 일으켜 세워 실제적인 화해를 촉구하신 성령 하나님이 감사하기만 하다.

조임생 권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