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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나라 지킨 자랑스러운 참전용사


 6·25한국전쟁 61주년을 맞아 참전용사인 우리교회 장로들을 만나 당시의 상황을 들었다. 채명신 장인상 전종현 김상원 윤문용 이상훈 강동식 박수영 박재충 민병성 김용진 이해석 양선근 박문규A 김문경 김성배 김기동A 유해영 안병조 유윤건 김의균 홍준섭 김인기 송기만 연로장로 등은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자랑스러운 용사들이다.

6.25는 잊지 못할 비극, 후손들 기억해야  
떨어지는 포탄 속에서 하나님 은혜 체험하기도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역사에 가장 뼈아픈 사건이 6·25 한국전쟁이다. 북의 남침으로 3일만에 서울을 함락당했고 우리나라 장병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6·25 61주년을 맞아 연로장로회실에서 참전용사들을 만났다. 이들은 6·25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연로장로회장 장인상 장로는 6·25 전쟁 중 죽음의 위기에서 하나님을 영접했다. 첩보부대에서 비밀전을 치르며 무공훈장 4개를 받기도 했다.

 유윤건 장로는 전쟁 중 총알이 얼굴을 관통하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건강 주셨음을 고백했다. “1950년 8월 29일 대구 팔공산 전투에 참여했다가 적의 총탄에 얼굴이 관통하는 큰 부상을 입어 상이군인이 됐죠. 그 전투에서 소대원들이 모두 죽고 3명만 겨우 살아남았습니다”라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3개월 전 자원 입대한 박수영 장로는 치열하게 싸웠고 2개월 만에 오른쪽 다리에 총알이 관통하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김기동 장로는 육군본부 육군중앙야전우체국에서 전후방 우편교류를 맡아 화랑무공훈장 3개를 타고 체신부 장관의 감사장도 받았다. 김 장로는 육군 본부에서 선배들과 함께 교회를 다닌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신앙을 키우고 있다.  

 김의균 장로는 파주 장단 전투를 회상했다. “개선면에서 임진강 건너 해병대 제1사단 3개 대대가 포진하고 있었어요. 그때 2대대 중화기중대의 기습 작전이 있었는데 사천강을 사이에 두고 중화기 중대에서 기관총 경기관총 바주카포를 쏴야했죠. 81미리 박격포로 무장한 중화기 중대에 있었는데 갑자기 포탄이 부족하다는 연락을 받고 트럭에 포탄을 잔뜩 싣고 전투지로 들어갔어요. 적군의 포탄이 날아와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서 엎드렸는데 적군의 포탄 하나가 바로 3미터 옆에 떨어진거예요. 다행히 불발탄이어서 살았죠. 지금 생각해보니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가 새벽기도하는 시간이었어요. 하나님이 어머니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저를 살려주신거죠”

 김용진 장로는 17살에 학도병으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지리산 토벌부대에서 작전을 실행하던 그 때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사방을 경계하면서 토벌작전에 들어갔어요. 적이 야간에 침투해 들어오면 겨울 새벽에 수색해 내려가곤 했죠. 한번은 적과 둘이 마주쳐 서로 총을 쐈는데 다행히 맞지 않았어요. 그 당시 맞은 파편이 오른쪽 발등에 아직도 있어요. 3년 8개월동안 엄청나게 많은 전투에 참여했던 그 당시는 죽기 아니면 살기 였죠”

 민병성 장로는 포병장교2사단 62대대 포병대 장교 출신이다. 포병대는 전방 후방 20미터 뒤에서 포를 쏘는 것을 했다. 민 장로는 1953년 7월 24일 휴전될 무렵에 철원 백마고지의 치열했던 전투를 기억하고 있었다. “적의 직사포가 초소를 포격해서 관측장교와 하사관 세명이 즉사했어요. 휴전이 다가오니까 북한군이 마지막 발악을 해 밤새 공습이 이어졌죠”

 당시 21살 청년이었던 강동식 장로는 집에 인민군들이 쳐들어와 인민군의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충북 예산에서 온양 온천까지 밤새 걸어가며 그는 이대로 끌려갔다가는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침 쌕쌕이(전투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인민군은 모두 엎드리라고 소리쳤고 길 옆에 숲으로 들어가 엎드려있던 저는 죽을 각오를 하고 기어서 도망쳤죠. 캄캄한 밤중이라 다행히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죠. 아마 그때 쌕쌕이가 지나가지 않았다면 인민군이 되어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했겠죠.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네요”

 전종현 장로는 16살에 강화 청소년 유격대로 참전했다. 강화도 5개도를 지킨 유격대 청소년이다.  강화 반공 유격대 창설 당시 6곳의 연대가 있었는데 전종현 장로는 강화군 교동면 고구리에 있는 자택을 국가를 위해 중대본부로 기증했다. “우리집이 중대본부가 됐어요. 피난민들이 내려오면 숙소도 제공하고 음식을 나눠주곤 했죠. 일제강점기부터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나누고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어요. 연안 연백전투에서 군인들을 도왔죠. 연료 대주고 식량조달하고, 전사한 군인들을 매장하고 간첩을 잡고 이런 일들을 하면서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가졌어요”

 목숨 걸고 싸워 나라를 지킨 6.25 참전용사들은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호국정신’을 강조했다. 요즘 청소년들 중에는 6월이 왜 호국 보훈의 달인지 알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역사의 뿌리를 바로 알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지켜준 참전용사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잊지 말아야겠다.  

글.이미나 / 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11.06.24. pm 18:27 (편집)
이미나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