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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역사인식 - 이상열 목사(춘천교회 담임)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기에, 각 매스컴에서 한국전쟁 당시 기막히고 참담한 슬픔을 안겨주었던 사연들을 앞 다퉈 보도한다. 그 중에 형제가 61년 만에 이산가족처럼 살아서 만난 것이 아니라, 죽어서 유골로 만나는 ‘유해 상봉’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950년 9월, 19살이던 경북 청도출신의 이천우 병장은 한 달 앞서 입대한 형 이만우 상병과 함께 전선을 누비다가 이듬해 5월, 형은 경기도 고양에서 전사하고, 동생은 넉달 뒤 강원도 양구 백석산에서 산화했다. 당시 두 형제의 유해를 찾지 못한 가운데 실종사망 처리되었었는데, 이 두 아들을 전쟁에서 잃어버린 어머니는 유해조차 품에 안아보지 못하고, 16년 전에 한을 품고 돌아가셨다. 늦게나마 지난해 10월, 백석산에서 발굴된 국군 유해 가운데 인식표와 유전자 검사를 통해 동생 이천우 병장의 유해가 수습되었고, 61년만에 두 형제는 서울 현충원 묘역에 나란히 안장되기에 이른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그 참혹함이 세계 전쟁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작은 한반도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것보다 더 많은 폭탄이 퍼부어졌으며, 공산진영에서는 소련과 중국, 자유진영에서는 UN의 기치 아래 16개국이 참전한 국제적인 전쟁이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발효되기까지 전투 중 사망이나 부상, 실종된 한국군은 32만 명, UN군은 16만 명에 이른다. 민간인 피해는 더 커서 사망이나 부상, 납치, 실종된 사람이 100만 명에 이르고, 피란민이 240만 명, 전쟁미망인 20만 명, 전쟁고아가 10만 명에 달했다. 공산진영에서도 북한군 52만 명, 중공군 9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3년 1개월간의 전쟁으로, 김익두 목사를 비롯한 많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의 순교와 교회 시설이 파괴되었으며, 전 국토가 폐허화되어 80%의 산업시설과 60만 채의 주택이 파괴돼버린 비극적인 재앙이었다.

 문제는 이 전쟁의 피해는 이렇듯 물질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한반도 분단이 고착화되고, 적대시하며, 정치 문화 사회 제반 영역에서 점점 더 이질화되어 가고 있으며, 설상가상 차츰 역사인식이 우리 가운데서 흐려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독립된 자주국가의 건설에 대한 민족의 염원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지금껏 우리 세대의 과제로 남아 있는 현실이다.

 호국보훈의 달에, 때맞춰 전국 교회들이 61주년 한국전쟁일을 국민기도일로 삼고, 구국기도회와 슬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의미있는 일들을 전개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역사 교육 강화 방안이 발표된 바 있다.

 성경은 신명기 32장 7절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잠언 22장 6절에도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선대의 역사를 소홀히 하면, 새로운 미래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를 올바로 알아야만 또 다른 역사의 비극은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뼈아픈 역사의 교훈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한다.
 

기사입력 : 2011.06.24. pm 16:28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