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런던에 볼일이 있어서 며칠간 머물렀다. 주일을 맞아 ‘예배를 드려야 할텐데’ 생각하다가 세계적인 목회자인 존 스토트 목사가 오랫동안 시무했고 지금은 명예목사로 있는 올소울즈 교회를 찾아갔다. 존 스토트 목사는 올해 91세로,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탁월한 설교자이자 경건한 삶의 표본 같은 성직자이다. 저녁 6시반에 시작하는 예배였다. 1, 2층을 가득 메운 저녁 예배를 놀랍게도 한국인이 인도했다. 또 일본인이 성경봉독을 하고 인도인이 피아노 반주를 했다. 세 명의 찬양자가 활기찬 율동과 함께 부르는 성가로 이끌어가는 찬양예배였다. 젊은이들이 인도하는 예배였지만 남녀노소, 외국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올소울즈 교회는 첫 방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고 마치 잘 아는 친척집의 잔치에 참석한 기분을 느꼈다. 이는 한국의 여느 교회에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편안함 같은 거였다. 교회를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불청객으로 보는 이들이 없었고, 오히려 그들이 은근하게 던져주는 눈길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교회 입구 주변에는 나처럼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성거렸지만 풍경화 속에 그려진 소품처럼 잘 어울려 보였다. 이방인인 나는 서성거리는 관광객들 사이로 태연하게 섞여 들어가 마치 늘 찾아왔던 단골손님 같이 편안하게 예배에 참여했다.

 어떤 장소의 분위기는 그곳 구성원들의 속마음을 드러낸다고 한다. 그래서 화려한 말과 글로 속일려고 해도 분위기는 방문한 사람의 육감에 들키고 만다. 이방인을 흔쾌하게 받아주는 올소울즈 교회의 분위기는 고독한 여행자의 마음을 살며시 안아주는 듯했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 중에 레위기 19장 9∼10절이 있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야훼이니라” 가난한 이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배려에 깊은 감동을 주는 구절이다.

 한국은 짧은 시간에 압축 성장을 하고 외환위기라는 깊은 수렁을 겪은 탓에 이중삼중으로 마음이 많이 팍팍해졌다. 사실 경제성장이 되고 선진국이 되면 좋을 것 같지만 국가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국민소득이 높아진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선진국에 정신병자가 많고 범죄가 만연한 것도 잘 살게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소위 상대적 박탈감과 연약해진 마음이 어우러져 마약과 향락에 빠지고 범죄의 유혹에 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 성장이 될수록 교회의 역할은 그만큼 더욱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 우리 사회의 기초가 되는 따뜻한 사랑과 넉넉한 마음, 신뢰 같은 가치들에 눈을 돌려야 하는 시점에 있다. 교회가 사회의 기대를 다소 저버리고 있는 부분도 있다고 하지만 잃어버리고 있는 소중한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아닌가 한다. 교회가 지상의 천국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이 찾아와서 희망과 용기를 얻어갈 수 있는 교회가 많아지기를 기도해본다.                          

 이상용(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