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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 대한 크리스천의 바른 자세


 “커피 프린세스, 브로크백 마운틴, 왕의 남자,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은 드라마나 영화들의 제목을 나열할 때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바로 ‘동성애’이다. 사실 크리스천이라면 동성애나 동성애자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미간을 찌푸릴지 모른다. 그러나 ‘커피 프린세스’나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은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왕의 남자는 우리 국민이 천만 명 이상이나 관람했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만든 감독은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이처럼 동성애는 어느새 ‘문화’라는 탈을 쓰고 우리 삶에 깊이 침투해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동성애를 다루는 웹 사이트가 50개 이상이 되고 이태원, 종로 등지에 있는 동성애자 관련 공간도 약 100여 곳에 달한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미국, 캐나다를 비롯한 서구사회에서는 공개석상에서 이들을 비판하는 것이 오히려 ‘소수자를 차별하는 범죄’가 된 지도 오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이 성적소수자로서 다원화되고 다양화된 현대사회에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성애를 합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으로서 동성애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첫째, 성경은 동성애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동성애는 ‘죄’다.
 아브라함과 헤어진 롯이 소돔성에 살 때 천사가 롯의 집을 방문했다. 그 때 소돔 사람들은 롯의 집을 에워싸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 19:5) 여기서 ‘그들과 상관하리라’는 말은 문맥상 동성애를 뜻한다.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과 불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유다서 7절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고 말씀한다. 따라서 불의 형벌을 받은 원인이 동성애와 같은 음란함 때문이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6장 9절에서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라고 말씀하는 것과 같이 남색하는 자 곧, 동성애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 동성애와 같은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천국 시민이 될 수 없다.

 또한 로마서 1장 26∼ 27절에는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고 말씀한다. 즉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에 합당한 보응을 받게 하셨다는 것이다. 동성애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둘째, 동성애의 거짓에 속지 말아야 한다.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의 성적 취향이 선천적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동성애 유전자나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는 신체적 요소들로 인해 동성애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를 결정하는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존재하지도 않는다. 만약 동성애가 유전적이라면 여러 세대에 걸쳐 동성애자가 나타나야 하지만 한 세대에 갑자기 동성애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또한 호르몬의 영향으로 동성애자가 되지 않는다. 정상의 남성과 동성애자의 남성 호르몬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반면에 부모의 잘못된 성역할 모델, 유년기의 불안한 성정체성, 잘못된 성경험 등의 후천적 요소에서 유발 요인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과 달리 단지 주변의 경향이나 환경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 의지와 절제력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동성애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물이다. 따라서 동성애가 선천적이라거나 환경 때문이라고 핑계 댈 수 없다.


 셋째, 동성애자들의 동성애 합법화 시도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을 혐오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처벌하는 규정을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실제로 서구 사회에서는 동성애자를 비난하는 것을 인종 차별이나 성 차별과 같은 범주에 넣어 증오 범죄(hate crime)로 규정하고 있고, 동성애자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동성애공포증환자(homophobia)로 매도하는 실정이다. 또한 이들은 먼저 군대나 대학교와 같은 작은 집단 내에서 교두보를 구축한 다음 한 집단, 한 집단씩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었던 ‘군대 내의 동성애차별금지법’은 범교회적, 사회적인 반대로 2012년 5월까지는 입법화할 수 없게 되었지만 언제든지 수면 위로 다시 부상할 수 있다. 동성애가 합법적으로 인정되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더러운 죄악들이 걷잡을 수 없이 우리 가정과 사회를 파괴시킬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크리스천들은 간절히 기도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넷째, 동성애는 개인과 사회의 건강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질병관리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2004년에는 전체 에이즈 환자 중 동성애로 인한 에이즈 감염이 44%에 이르고, 2001년 이후 에이즈에 감염된 10대 남자 청소년 54%가 동성애로 인해 감염되었다.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들은 비정상적 성관계로 인해 만성 대장 질환, 치질, 직장암, 간염, 각종 성병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질병 통제 및 예방 센터는 6500만 명의 미국인들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성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중남미 지역에는 160만 명의 에이즈 환자가 있고, 에이즈 환자의 절반 정도는 동성애를 통해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동성애자들은 정상인보다 최소 2배 더 알코올에 의존하고, 남성 동성애자는 3배 더 자살을 시도한다. 남성 동성애자 수명은 일반 남성에 비해서 25∼30년이 짧고, 알코올 중독자보다도 5∼10년 짧다. 그런데 동성애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절대로 이런 비참한 실상을 다루지 않는다. 도리어 동성애를 또 다른 핑크빛 사랑이야기로 위장한다. 동성애는 정상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다만 치명적 질병으로 고통 받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동성애자였던 이 모 씨는 이렇게 말했다. “내 나이 육십이 넘었는데 과거 내가 알고 있던 동성애자들은 대부분 죽었거나 병들어 있습니다. 나이가 5,60세가 된 사람들이 아직도 거리에서 술과 비정상적 성관계로 지내고 있으며, 대부분 에이즈나 B형, C형 간염에 걸려 죽음의 날들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돌아갈 가족도 없고 직장을 얻을 수도 없으며 거리에서 술과 약물과 지독한 성 중독으로 살다가 죽어갑니다. 이것이 인권입니까?” 인권을 존중받는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 의지로 방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 소수자로서의 인권 존중이라는 미명과 영상 산업의 어리석은 미화 속에 사회는 점점 죄악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개구리를 끓는 물에 넣으면 바로 죽지만 차가운 물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그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헤엄치다가 죽게 된다. 이처럼 우리 크리스천들이 죄악으로 가득한 문화에 무감각한 채 점점 익숙해져 간다면, 우리 가정과 사회는 재앙과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럴 때 크리스천들이 시대를 분별하고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로마서 12장 2절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한다. 단지 동성애를 혐오스러워하는 것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동성애가 얼마나 거짓과 죄악으로 점철되어 있는 타락한 문화인지를 분별하고 주도적으로 알려야 한다. 동시에 죄악으로 오염되고 타락한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전파해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죄는 미워하실 지라도 죄인은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으로 회복시켜 주셨다. 따라서 우리 크리스천들과 교회가 동성애에 대해서는 분명하고도 단호한 반대의 입장을 취해야 하겠지만, 동성애자들을 사랑으로 변화시킬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그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눈물 어린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기사입력 : 2011.02.11. pm 16:49 (편집)
국제신학연구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