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 기억상실증…90%회복 건강한 삶 찾아

 군에서 중대장으로 예편한 남편은 사업이 기운 후 친척의 도움으로 운수회사에 취직했다. 사고 날 남편은 일을 마치고 밤 10시 넘어 스쿠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집 근처 사거리를 지나던 남편은 고척동 방향에서 오던 음주운전자 차량의 과속에 밀려 그 자리에서 10미터를 끌려갔다. 골반이 깨지고 머리와 다리를 크게 다친 남편은 급히 병원으로 호송됐다. 다리 살점은 다 떨어져 뼈만 앙상했는데 문제는 머리였다. 검사 결과 남편의 뇌 두 군데는 새까맣게 변했으며 충격으로 머리가 부풀어졌다. 병원에서는 남편의 의식이 전혀 없으며 살 가망이 희박하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나는 “살 수 있다. 고쳐진다”고 말했다. 그래도 병원측의 반응은 냉랭했다.

 사고 후 두 달 넘게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남편에게는 변화가 전혀 없었다. 의식이 없어 피부 이식 수술도 불가능했다. 가끔 의사들이 의식 없이 누워있는 남편의 젖꼭지를 비틀며 반응을 확인할뿐 이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남편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던 중 70여 일이 지났을 때 의사가 젖꼭지를 비틀며 남편의 상태를 체크하는데 남편이 갑자기 어눌한 말투로 “아∼프∼”라고 말했다. 살 가망이 없다던 남편의 의식이 돌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 시선을 맞추려하지 않았고, 자꾸만 허공을 바라봤다.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주전자를 가리키며 무엇이냐고 묻자 “이름이 없어요”하며 엉뚱한 말만 했다. 이상하게 생각된 나는 의사에게 물었다. 그러자 의사 말이 뇌 손상으로 기억을 상실했고, 현재상태가 3살 아이의 의식 수준이라고 말해주었다.

 깨어나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줄만 알았던 남편이 기억상실증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나를 보고 ‘엄마’라고 부르며 모든 것을 달라고 떼쓰는 남편을 그저 손놓고 볼 수만은 없었다. 숫자를 가르치며 아이들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어떻게든 기억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하루는 병실에 누워 있는 남편 복부에 핫 팩을 올려주고 화장실에 간 순간, 옆 환자 보호자의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놀라 뛰어가보니 남편이 핫 팩 뚜껑을 열어 그 안에 들어있던 뜨거운 물이 침대 시트와 남편의 엉덩이 쪽으로 쏟아졌다. 얼른 남편을 옮기고 보니 놀랍게도 사고로 인한 외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여전히 어눌한 말투로 “하나님 아버지가 피하라 하셨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 “하나님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기도를 했다. 내가 교회다니는 것을 핍박하며 성경책을 쓰레기통에 내던지던 남편의 입에서 기도가 터져 나오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은 기도 후 나에게 “하나님은 나에게 피하라고 하셨고, 그 옆에 있는 나쁜 사람은 나를 보고 박수치며 기뻐했다”며 계속 “오르막도 내리막도 힘들지 않게 지켜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께서 남편을 지켜주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뒤 병원 생활은 2년 가까이 계속됐다. 수입도 없었고, 막내는 시골 친정집에 맡겨졌으며 위로 두 아들은 제대로 돌볼 틈도 없는 등 모두들 힘든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한 중에 생각지도 않았던 도움의 손길도 있었다. 예전에 수해 피해로 젖은 이불을 말리는 고물상 할아버지가 계셔 안타까운 마음에 이불 한 채를 드렸는데 할아버지가 우리 소식을 듣고 한동안 그날그날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우리를 돌봐주신 것이다. 그 때 나는 하나님의 명령 따라 이웃을 위해 베풀면 반드시 나에게 복이 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6년이 흘러 어느 날, 남편은 동생의 이름을 시작으로 청년기 시절, 월남전쟁에서의 기억을 되찾아갔고, 지금은 기억의 90%를 회복해 믿음안에서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살 가망조차 없다던 남편이 살아 지금 내 옆에 있는 것을 볼 때면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힘들 때 희망을 주시고 위로를 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