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한파는 정말 매섭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그러지지 않은 연속적 추위는 난생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추운 날 서울역 주변에 갈 일이 있어서 갔다가 남대문쪽 지하도를 건넜다. 대개 지하도라면 좀 온기를 느낄 만도 한데 그곳은 바람만 없을 뿐 냉장고처럼 냉기가 가득했다. 그 지하도의 가운데 기둥 사이로 종이 박스와 얇은 천으로 만든 이불인지 가리개인지 모를 것들을 덮고 노숙자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얼굴까지 덮어쓰고 누웠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총총 걸음으로 지나가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의 눈초리는 동정을 바라는 기대감도, 누군가로부터 받아보았을 ‘사랑’의 기억조차 상실한 듯해 보여 지금도 잘 잊혀지지 않는다.

 지난 주 크리스천 투데이 영국판을 읽었다. 한국만 한파가 몰아친 게 아니라 런던의 겨울도 유례없는 추위로 떨고 있다. 영국 교회 20여 곳이 노숙자들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하는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교회가 운영하는 노숙자 센터는 노숙자들이 거리의 폭력으로부터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잠자리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었으며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추었음을 밝히고 있었다.

 교회 노숙자 센터를 운영하는 관계자는 잠자리와 먹을 것, 샤워시설 등을 다 제공할 수 없는 교회는 자원봉사자나 혹은 먹을 것, 또는 자금 등 일부만 제공할 수도 있다며 지원을 호소했다. 이 기사를 읽어보면 런던의 교회 노숙자센터들이 그냥 선행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세심한 배려 속에서 노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교회 노숙자센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노숙자들에게 예수님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우리가 하는 일을 보고 느낄 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이며, 이곳에서 하나님의 처소와 피난처에 대해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여야 간에 복지논쟁이 뜨겁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사랑이 없는 복지’는 그 효과가 아주 미미하다는 냉철한 반성이다. 현대적 복지의 유래는 과거 교회가 했던 자선 행위를 국가가 대신한 것인데, 국가의 복지는 필연적으로 ‘사랑’은 실종되고 무의미한 복지 효과의 분석만 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복지는 필요하지만 국가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멸시받는 약자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교회만이 할 수 있다. 요즘 지구촌 곳곳은 각종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기상이변의 강도가 해마다 심해지고 인명피해도 갈수록 늘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구제역까지 창궐하고 있다. 자연을 함부로 다룬 죄, 우리가 잘 먹자고 가축을 가볍게 다룬 죄를 깊이 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 신자가 줄고 있는 것 같았던 영국 교회들이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겨울 잠자리를 제공한다는 기사를 읽고 우리 교회들도 올해 훈훈한 일을 많이 하여 사회로부터 칭송받는 한해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이상용(MBC 심의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