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수(白壽) 교수 “가르칠 때가 가장 행복”
국내 최장 총장 재임… 교육 매진
‘나의 신경’ 자신의 기도문 매일 외워
‘청춘이란 인생의 한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씩씩하고 늠름한 의지력,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정열을 말한다. 나이를 먹었다고 사람은 늙는 것이 아니라 꿈과 이상을 잃을 때 비로소 늙는다…’(사무엘 울만)
지난 11일 백수(白壽)를 맞은 노교수 강석규 명예총장. 그의 학문에 대한 꿈과 열정은 누구보다도 뜨겁다. “강단처럼 소중하고 행복한 곳은 없다”고 말하는 강석규 명예총장은 겨울 추위가 매서운 요즘도 강의 준비로 분주하다. 올해도 교양강좌 외에도 대학교 채플, 고등학교 채플 등에서 할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성경에 꿈이 없는 사람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걱정과 고민으로 인생이 허무하고 느껴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됩니다. 생각을 바꿔 크고 높은 아름다운 꿈을 가지면 희망이 보이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부정적인 생각은 물러납니다. 이렇게 되면 차츰 자신감을 갖게 되며 일의 성취감도 맛보게 됩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나이를 무색케 했다. 70대로 보일 만큼 건강한 그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안경을 쓰지 않고 책을 읽는다. 50여 년간 사용한 책상에 앉아 하루 2, 3시간씩 책을 보는 게 주요 일과다.
그의 공식적인 교단 경력은 66년. 초등교사 6년, 중등교사·교장 18년, 대학교수 16년, 대학총장 26년을 지내 국내 최장 총장 재임기록도 갖고 있다.
충남 논산에서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난 강석규 명예총장은 작은 키에 몸도 왜소해 ‘어려서 늘 아둔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칭찬과 격려라면 모를까, 이런 말들은 그를 주눅들게 했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게 했다. 게다가 체력도 따라주지 않았다. 20세까지 병을 달고 살았다. 그의 주변에 좋은 것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여건이 오히려 꿈과 이상을 키울 수 있게 한 못자리가 되었다고 말했다.
독학으로 초ㆍ중등교사 자격증을 딴 뒤 24세에 초등학교 교사로 교육자의 길에 들어섰고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34세에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고 총학생회장까지 지냈다. 이후 충남대, 명지대 교수를 거쳐 서울 대성중ㆍ고교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육영사업에 나섰다.
저술 활동도 왕성했다. 60년 ‘최신 원자력개설’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성공의 습관’ ‘생각을 바꿔라 희망이 보인다’ 등을 발간하기까지 23권의 책을 냈다.
총장이 된 것은 1981년 호서대를 설립하면서다. 교수 시절 기술 하나만 믿고 세 번이나 공장을 차렸다가 자본 부족으로 문을 닫았던 아픈 경험이 있는 그는 호서대에 모든 것을 쏟았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해 대학교 안에 벤처기업단지 ‘호서밸리’를 조성했는데 현재 그곳에는 재직교수가 창업한 17개 기업과 학생이 창업한 기업 39개사가 입주해 있다. 2003년에는 벤처 경영과 벤처 금융, 유비쿼터스 건설, 퓨전 예술 등 이색학과 중심의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도 설립했다.
그의 신앙은 이런 열정과 도전의식의 촉매제가 됐다. 그래서 강석규 명예총장은 강의때마다 “나는 과학자다. 그러나 과학보다 더 위대한 것은 신앙”이라고 고백한다.
65세 때의 어느 날 그는 ‘나의 신경(信經)’이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기도문을 만들었다. 나의 신경은 ‘사도신경’처럼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기 위해 적은 것인데 신앙의 초심(初心)을 잃지 않기 위해 지금껏 매일 읽고 외우고 있다. 1978년 처음 만들어진 나의 신경은 현재까지 몇십차례 수정돼 그의 안주머니에 담겨있다. 그리고 스스로의 신앙고백과 다짐에 따라 사재를 모두 털어 교회와 호서대 발전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교육만큼 보람차고 가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남은 여생도 도전정신과 꿈을 가진 인재양성에 바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석규 명예총장은 “도전정신을 갖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게 건강의 비결”이라며 “앞으로도 학생들을 계속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글·이소흔 / 사진·김용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