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천지효(出天之孝)라 하던가. 효도는커녕 부모 가슴에 대못 박는 자식이야기 심심찮은 세상에 우리는 살아간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서 효성이 지극한 한 청년의 이야기가 심금을 울린다. 이 청년은 나와 동갑내기 외사촌자매의 하나 뿐인 아들이다. 보통 자식들 같으면 음주벽에 빠져 가정을 돌아보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 아들은 음주가 아버지의 건강을 해칠 것을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다. 아버지의 간경화가 악화돼 간이식 말고 소생할 방법이 없게 되자 아들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가난한 어머니를 설득했다. 돈으로 아버지를 살 수 없지 않느냐고.

　넉넉지 않은 살림을 쪼개 어렵사리 간 이식을 해 드렸지만 딱하게도 아버지는 몹쓸 후유증을 앓고 있다. 설상가상 생활을 이끌어 오던 어머니도 간암수술을 받고 자리보전 중이다. 이제 대학 졸업하고 갓 취직한 아들은 양쪽 부모님을 돌보며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들은 출근 전후 아버지를 위해 죽을 쑤어 입에 떠 넣어드리고, 어머니에겐 당근을 강판에 갈고 시금치 생즙을 만들어 마시게 한다. 어느 암환자가 시금치 당근 즙으로 치유효과를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하루도 빠짐없이 해 온 일이다. 직업 특성상 심야 시간대에 퇴근을 해도, 올해 시금치가 그렇게 비싸도 한 번도 거른 적 없다면서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중병을 앓는 부모가 안방 건넌방 차지하고 있으니 얼마나 자신의 신세가 답답하고 힘겨울까? 하지만 그 아들은 그런 티가 하나도 없다. 그 아들의 맑고 순수한 얼굴표정을 보며 지상에 천사가 있다면 바로 저런 얼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에서 무시래기를 많이 보냈다며 아들 편에 나누어 준다기에 만난 자리에서 물었다.
 “힘들지 않니?”
 그러나 외사촌의 아들은 싱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당연히 제 할 일인 걸요, 뭐”
 원래부터 불평이라곤 모르는 타고난 순명의 기질인 것일까? 대다수 젊은이들의 뜨거운 혈기가 인터넷 안티로 불붙는 요즈음 이 선한 아들은 부모님 병수발에 매달려 인터넷을 열어볼 시간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늦은 시간, 외사촌의 아들은 퇴근하면서 시장에 들러 반찬거리를 사고 부모님 생각에 총총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 적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 새 그를 설워 하나이다”

 박인로의 시조 속에, 돌아가신 부모를 향한 효심이 애달프다. 멀리 계신 어머님 생각에 문득 가슴이 아려온다.

조임생 권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