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그리고 우리’… 관계 조절능력 생후 3년간 형성

 초등학교로 집단 상담을 가는 날이면 언제나처럼 줄지어 정리되어 있는 책상과 의자가 옛 기억을 자극한다. 지금은 개인책상과 의자가 있는 학교가 많지만 예전 필자가 학교 다닐 때에는 두 사람이 함께 사용해야 하는 2인용 나무 책상이 있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자신의 영역과 짝의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깊이 파 놓은 ‘중앙선’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는 것에 대해 불편감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한편, 학교 급식이 없었던 시절에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 학교생활의 큰 즐거움이었다. 도시락을 먹을 때면 친한 친구들과 한 책상에 둘러 앉아 먹는 것이 일반이었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네 반찬 내 반찬 할 것 없이 나누어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은 커녕 유쾌함마저 느끼곤 했다. 그리고 이때의 감정 또한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떠한 때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고 하고 또 어떠한 때 자신의 자리를 타인과 공유하려 하는 것일까?
 잘 지은 건물에는 건물의 용도에 맞게 적절한 크기와 모양의 창과 문이 있다. 창을 통해 건물에는 빛과 신선한 공기가 들어올 수 있다. 바깥에 용무가 있어 사람이 나가거나 다른 사람이 방문할 때, 새로운 물건을 들여오거나 옛 것을 내어다 버릴 때는 문을 이용한다. 문은 보다 적극적인 소통의 통로가 된다. 우리의 심리세계도 건물과 같아서 창과 문이 있다. 간접적으로 외부와 소통하는 창이 있고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문이 있다. 자기의 성격과 역할에 맞는 적절한 크기의 창과 문을 마음에 지닌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가 원활하고 만족감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은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타인과 만남이 있는 시간과 공간 사이에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균형을 찾을 수 있고 지나치게 고립되어 외로움을 느끼지도, 지나치게 노출되어 불편감을 느끼지도 않은 채 편안한 사회활동을 누릴 수 있다.
 반면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창과 문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손님과 외부의 지나친 간섭,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버린 관계들 속에 ‘나’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기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창은 모두 커튼으로 가리고 문도 잠가 버린 채 전화도 초인종도 무시하고 혼자 고립되어 있는 사람은 자신만을 위한 공간과 시간을 확보했다는 만족감도 잠시고 금세 외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창과 문을 갖게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이 형성되는 시기는 언제일까? 태중에 아기는 어머니와 탯줄로 연결되어 있다. 몸으로는 두 사람이지만 이들은 생명유지의 기초가 되는 산소와 영양분을 공유한다. 그렇게 꼭 10개월을 함께 한 후 아기와 어머니의 몸을 연결했던 탯줄은 끊어지고 신체적인 분리를 경험하게 된다. 물론 아기는 어머니의 몸에서 젖을 빨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몸이 분리되었지만 한동안 기능적으로 어머니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시기를 보내게 된다. 대상관계의 일부학자들은 이것으로 인한 아기의 심리적 충격에 대해 주목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이러한 과정 속에 아기가 경험하는 스트레스 그리고 변화는 성장을 위한 중요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아기는 어머니에게 안겨 젖을 먹는 시간도 있지만 혼자서 자신의 손과 발을 빨며 놀이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기어다니기 시작하고 운동능력이 좋아질 때 아이는 주 양육자인 어머니와 타인을 구분하는 낯가림을 시작하여 자신의 관심을 따라 세상을 탐색하다가도 어머니가 아닌 낯선 사람을 보면 불안을 느끼고 낯익은 얼굴인 어머니를 찾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낯가림은 어머니와 아기 사이의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유용한 스트레스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과 너무 가까우면 개인의 영역을 침범 받은 듯한 불편감과 불쾌감을 느끼게 되고 타인과 너무 멀어지면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에게 맞는 적정한 관계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관계의 조절능력은 보통 생후 3년 동안 형성되어지는데 이 시기에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혼자 무언가 해보려고 하는 자율성과 주도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때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기의 의사를 존중해 주고 위험하거나 좋지 않은 욕구에 대해서는 제지를 가하게 된다. 이렇듯 부모를 통한 조율은 아동으로 하여금 건강한 조절능력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부모의 재정적인 무절제, 환경의 무질서, 부정확한 시간관념 등은 자녀의 조절능력 형성을 방해하는 요소이다. 또한, 이와 정반대로 엄격한 규율과 통제를 제시하는 부모는 자녀가 스스로 관계를 조율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녀의 자기 조절과 성장을 돕는데 실패하게 된다.
 나는 과연 얼마나 건강한 관계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주어진 활동을 해보며 자신의 관계능력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1 크리스마스에 생긴 일
그림출처: John Gray(1994), What you feel you can heal, heart publishing.

① 옆의 그림을 한 장씩 나누어 갖고 그림 속의 말풍선을 채워 보도록 한다.
② 자신이 채운 말풍선의 내용을 읽어 보고 큰 아이의 입장이 되어 감정을 인식해 보도록 한다. 동생을 보며 불쾌한 듯 바라보는 마음이 건강한 마음인지 아닌지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③ 위의 상황에서 어머니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적어본다.
④ 두 자녀를 모두 만족시키기 위한 다른 접근방법은 없을지 생각해 본다.
⑤ 활동을 함께 할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말풍선을 어떻게 채웠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⑥ 위의 상황에서 큰 아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대처 방법은 무엇일지 이야기를 나눈다.

글: 김수정(김수정심리발달연구소 소장)
일러스트: 정연문(joyful_y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