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 미국에 정착한 영국 청교도들이 이듬해 11월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에서 유래한다.
성경 말씀대로 경건하게 생활하려는 청교도들과 이미 형식주의적 신앙 생활에 젖은 영국의 국교도들 간에는 많은 신앙의 갈등이 있었다. 영국의 국왕은 영국의 국교도와는 다른 신앙 견해를 가진 청교도들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신앙적 자유를 허락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네덜란드로 건너갔다.
청교도들은 신대륙으로 가기 위해 7년 동안 힘들여 일해서 번 돈으로 배를 샀다. 그러나 스피드웰이란 이름을 가진 그 배는 장기간 항해에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다른 배를 구입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그 메이플라워이다. 신앙의 열정에 불타는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인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먹을 물과 양식이 부족한 가운데 행해진 두달이 넘는 항해는 험난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꿈에 부풀게 했던 신대륙에서의 생활도 생각처럼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도착한 때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심한 추위와 식량난, 기후차와 영양 실조들의 원인으로 인해 첫 겨울에 44명이나 죽었다. 그 나머지도 질병에 시달렸다. 그때 심한 고통 속에 있던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은 마음 좋은 인디언들이었다.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청교도들에게 옥수수 등의 곡물을 가져다 주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다음해인 1621년 청교도들은 풍성한 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다. 이에 청교도들은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식과 칠면조 고기 등을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의 기쁜 첫 추수 감사절을 가졌다.
그후 1623년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추수 감사절을 공식 절기로 선포했으며, 1789년에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이 이를 전국적으로 지킬 것을 선포했다.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 때는 잠시 행사를 중단했다.
이렇게 폐지되었던 추수 감사절이 다시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1863년 링컨 대통령이 추수 감사절을 미국의 연례적인 축일로 선포하면서부터 였다. 이는 사라 요세파 헤일 여사의 “추수 감사절은 미국의 건립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음을 기념하는 연례적인 절기로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이 당시 미국에서는 남북 전쟁이 진행중이었는데, 추수 감사절 하루 동안은 전쟁이 중지되기도 했다.
구약에서는 초막절로 드렸다. 초막절은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셔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된 것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이때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로 나가 초막을 짓고 일주일을 지냈다. 절기중에 초막에 거주하면서 하나님께서 모세 시대에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이 절기의 목적인 것이다(레 23:42∼43).
임 훈 목사 push77@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