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심으면 더 큰 사랑의 열매를 만날 수 있습니다

봉사를 통해 내가 가진 상처 치유돼
작은 섬김이 사랑의 큰 열매 맺음 깨달아

 알록달록 오색단풍이 한잎 두잎 바람에 뒹굴며 길모퉁이에 수북이 쌓이는 가을. 이 때면 함께했던 환우들이 떠오릅니다. 울고 웃으며 함께했던 날들이 지금은 추억이 되고 때론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제가 처음에 만났던 환우는 마치 저를 시험하는 것 같았습니다. 48세의 고환암 환자였는데 병실이 싫다며 침상을 복도 창가로 옮겨 따뜻한 햇볕을 벗 삼아 시간을 보내시곤 했습니다. 더 이상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치료가 없어 창백한 얼굴로 통증과 싸우며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 그분의 모습이 안쓰럽고 측은하며 불쌍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조금이나마 그분이 제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그저 발등만 손으로 살살 비벼주는 것이 다였죠. 환우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거나 갑자기 스킨십을 하면 싫어하거나 거절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어요. 곁에서 마음속으로 기도만하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시한부 환우들을 대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호스피스봉사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자 이 봉사를 계속해야 하나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후 다시 그 분을 찾아뵈었을 때는 이미 주님 곁으로 가신 후였습니다.
 처음 시작한 호스피스봉사이기에 의욕은 앞섰지만 실제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분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며 조금 더 기도해드리지 못한 것, 말벗을 해드리지 못한 것 등을 떠올리며 죄송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제가 순복음호스피스에서 봉사를 하게 된 것은 2002년 자영업을 시작하며 심신이 힘들 때 주님께 의지하기 위해 성경학교를 다니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금 더 하나님께로 가까이가고자 성경학교, 성경대학, 성경대학원, 신학아카데미, 상담학교 초·중·고급반을 거쳐 순복음호스피스봉사자 정규교육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기위해 상담공부를 시작하며 저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제가 받은 상처들이 치유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작은 사랑이나마 실천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2004년 12월 순복음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힘들 때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엡 4:13)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무더위에 시원한 빗줄기라도 내려줬으면 하는 여름날 담도암에 걸린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무속신앙으로 막걸리를 뿌리는 것이 귀신을 쫓는 유일한 방법일 거라 굳게 믿었던 할머니는 찾아 갈 때마다 “나보고 교회다니라고 하지마. 예수 믿으라고 하지마”라며 엄포를 놓았습니다. 환우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섬김으로 대할 때 환우들은 마음을 열게 됩니다. 몇 달이 지나 저와 호스피스 봉사자들을 만나고 나서 할머니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우리 봉사자들이 기도하며 배를 만져주면 통증이 사라지고 마음도 편안하시다며 아픈 배를 내어놓고 우리 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랬던 할머니가 그 이듬해에 천국으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우리 봉사자 외에도 할머니를 기도해주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할머니의 시각장애인 아들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아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지금도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섬김을 통해 한 영혼을 구원시키고 또하나의 열매가 맺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주셨던 것입니다.
 2006년 봄 아버지가 간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유난히 약자의 편에 서셨고 사랑이 많았던 아버지의 삶이 본이 되어 지금도 제가 봉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식으로서 구원 받지 못한 아버지가 너무나 안타까워 아버지를 위해 간절히 기도로 매달렸습니다.
 아버지는 2007년 9월 소천하시기 며칠 전 “내가 의사였는데 호스피스 봉사하는 딸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하늘나라에 가게됐구나. 고맙다”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소천하시기 전에 아버지는 마음문을 여시고 침상에서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뿐입니다.
 저는 그동안 많은 환우들을 만났습니다. 주변에서는 제가 환우들을 위로한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반대로 환우들을 통해 제가 위로 받습니다. 또한 그들을 섬길 때 전혀 힘이 들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들을 통해 저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자주 만날 수 있었고 기적을 체험하고 삶에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 10월초 20세의 권나영 환우를 만났습니다. 폐포성 연부 조직 육종이라는 희귀암에 걸려 다리수술을 했고 폐로 전이 되어 두 번의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누구나 두렵고 고통과 절망에 있늘 법한 상황에서 나영이는 누구보다 유난히 맑게 웃습니다. 나영이를 통해 저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나영이는 조용기 목사님의 안수기도도 받았고 한국 메이크 위시재단의 주선으로 반기문 총장을 만나 외교관의 꿈이 더 확실해졌다고 말합니다. 나영이는 욕창이 생겨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모든 일을 스스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침상에서 머리를 감겨 주고 기도를 해주면 환하게 웃으며 너무나 시원하고 좋다고 합니다. 늘 말씀을 묵상하며 기적의 주님을 바라는 나영이를 위해 저와 봉사자들은 늘 기도합니다.
 저는 주님이 시키신대로 작은 사랑을 심어 많은 열매를 얻었음을 고백합니다.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사랑을 심는다면 더 큰 사랑을 거둘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가오는 2011년에는 주님의 어떤 예비하심이 있을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정리=정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