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중년이 되어 지난 시절의 여러 교제를 되돌아보면 초등학교 시절의 우정이 가장 순수했던 것 같다. 그 때는 세상이 모두 가난하여 서로 시기하지 않고 잘 나눠먹고 지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어린 눈에 세상의 구별은 보이지 않고 순수한 감정만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순수했던 초등학교 친구도 서로 다른 중학교로 갈라지고 고등학교를 들어가 세상의 차별에 차츰 물들게 되어 서먹해지고 대학에 들어와선 그런 구별이 우리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으면서 멀어진다. 그리곤 직장을 잡고부터는 세속의 허영과 물질에 온통 지배당하면서 ‘순수한 우정’은 아예 잊혀지고 만다.

 이렇게 고목나무 껍질처럼 딱딱해진 나의 마음속에 한 줄기 생명을 불어넣어 준 계기는 10년 전쯤에 있었던 외국에서의 성경공부모임이었다. 짧은 이국 생활에서 성경공부모임 참가자들은 한국에서 가져왔던 기준과 차별을 다 버렸다. 가식와 허세를 벗어던지니 마음이 편안해지며 어릴 적 초등학생처럼 순수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런 마음 상태에서 처음으로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깊이 토론하는 경험을 가졌다. 우리들의 직업과 직위와 나이와 같은 세상의 구별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그 차이에서 배웠다.

 이때 같이 교제를 나누었던 사람들 중의 한 성도는 지금도 신앙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지난 달에도 이 성도를 대구로 찾아가 교제했다. 그는 대학 시절 회심을 하고 그 이후로 현재까지 경건한 생활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 그를 만났던 것은, 자신이 십수 년 동안 묵상해왔던 신앙의 의문이 많이 풀린 것 같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인간 사랑 하심이 우리가 보기에 왜 사람마다 차이를 보이는지에 대해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의 깨우침을 듣고 나도 많은 은혜를 받았고 나의 신앙이 자라는 것을 느꼈다.

 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서도 많이 깨닫지만 성도와의 진정한 교제는 구체적인 자극을 주고 받고 서로 북돋우며 나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다는 점에서 유익하고 필요하기도 하다.

 그 성도를 만날 때마다, 젊은 날에 부질없는 쾌락과 욕망에 많은 시간과 헛된 노력을 쏟았던 것을 후회하고 좀더 일찍 교회에 나와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지금도 세상의 교제는 여러가지 유혹과 욕망들을 감추고 시시때때로 접근해온다. 세상에 발디디고 있는 이상 세상과의 교제를 피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의 교제에 휩쓸려 세상의 노예가 되거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를 계속한다. 이럴 때 세상의 교제를 참된 평화와 위안으로 교체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올들어 나는 경건한 생활을 나름대로 실천해오고 있다. 각종 세상 교제를 자제하고 경건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한 결과, 지금 이 시점에 나는 결코 작지 않은 ‘기적’을 경험하고 있다. 최근들어 나의 왼쪽 손목 위에 있던 작은 혹이 사라지고 고쳐질 것 같지 않았던 오른쪽 허벅지와 엉덩이 부분의 근육 당김 현상과 통증도 크게 완화되고 있다. 나는 경건한 생활의 결과라고 믿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세상의 교제가 많아질 수밖에 없으며 그 세상의 교제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은 부담을 안겨준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조직생활이나 비즈니스면에서 인간관계가 불필요하게 많이 작용하는 특징을 갖고 있어서 중년의 위기가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이와 같이 세상의 교제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은 교회에 나와 말씀 듣고 기도하며 성도들과 교제 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는 것 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상용(MBC 심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