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인의 ‘꽃’은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이다. 이 시의 마지막 연엔 누군가를 향한 시인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또한 기억속에 아름다운 의미로 남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가을이 오고 과일가게에 빨간 사과가 수북이 쌓이면 아슴아슴 가슴을 물들이는 한 컷의 추억이 있다. 어릴 때 학창시절 과수원집 딸인 친구가 있었다. 웃으면 눈이 먼저 웃는 귀여운 얼굴의 그 친구는 나를 자기네 과수원으로 자주 데리고 갔다.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새빨간 사과는 그야말로 신의 축복이었으며 놀라운 경이였다. 바라보기만 해도 황홀하고 행복했다. 사과 한 알 사먹기도 어려운 가난한 시절, 나는 친구네 과수원에서 눈으로 사과를 수천 개쯤은 따먹었던 것 같다. 사과밭 언저리 풀덤불에선 작은 종달새 집이 있고 파란 새알 다섯 개가 소담스럽게 담겨있었다. 어미 새는 먹이를 찾으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동글동글 귀여운 새알을 만져볼까? 말까? 망설였다. 그 때 충동을 누르고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난 것이 참 다행이다 싶다. 그 알은 부화하여 오월하늘을 누비며 노래하는 종달새가 되었겠지. 땀 흘려 일하는 농부의 귀를 즐겁게 하는  하나의 눈짓이 되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데 책가방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지퍼를 열어보니 새빨간 홍옥이 하나 가득 들어있었다. 언제 사과를 넣었을까? 가슴이 뭉클했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그 사과가 생각나고 사과처럼 달콤한 친구의 마음이 느껴진다.

 지금은 천리 먼 길 떨어져 살다보니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지만.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하고 살갑기만 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세월이 흘러도 소식이 끊어졌어도 추억을 펼쳐보면 그리운 사람, 보고 싶은 얼굴로 남고 싶은 것이다.

 주일마다 병원으로 아픈 사람을 찾아가,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는 일도 그 영혼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다. 영혼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전도가 불신의 벽을 허물 거라는 믿음은 우리 전도실 전도자들의 공통된 마음이리라.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세상 사람들이지만 받은 은혜가 크기에 스스로 나서서 하는 일이다. 때로는 거절당하고 내침을 당하면서도.

 우리들의 전도가 그들에게 가슴 뭉클한 뜨거운 의미로 다가서길,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되기를 기도한다.

 조임생 권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