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도 무덥던 여름이 어느덧 저만치 물러가고 아침 저녁 옷깃을 스치는 찬 바람에 온몸이 움츠러든다. 며칠새 얼굴을 내민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은 벌써 가을을 배웅하고 겨울을 재촉하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싼 배추를 사려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은 배추를 받아들자 기쁜 표정을 활짝 짓는다. 그래도 나만 사게 되어 빈손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말에 흐뭇하다. 물난리를 겪은 기억이 아직 선명한데 배추값 파동이라니 서민들은 벌써 겨울 나기가 걱정이다. 수출은 잘 된다고 하는데, 보통 사람들의 삶은 펴질 줄을 모른다. 시중에 돈이 메말라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다. 한국이 자살률이 높고 술을 많이 먹는 것도 삶이 팍팍하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TV를 보면 자극적인 소재들로 대중들의 눈길 끌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치인들의 발언도 경중과 이치를 따지기보다는 상대를 반드시 타도하고야 말겠다는 인기영합주의가 노골적이어서 씁쓸하다. 국민을 위한다고 말한다면 비방하고 싸움만 해도 면죄가 되는 것인지 좁은 정치가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세속적 물질주의, 쾌락주의가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시대에 따뜻하고 넉넉한 복음이 그립다. 교회에 찾아오면 좋은 설교를 들을 수 있으련만 교회를 나오지 않는 수많은 이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미국에는 기독교 영화만을 전문으로 만드는 영화제작자들도 있고 기독교 필름 페스티벌들도 매년 개최되고 있다. 기독교 복음을 주제로 만든 영화도 수준의 문제일 뿐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작품들이 꽤 있다. 기독교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종교이기 때문에 학문과 예술의 소재가 되고 현재도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고 작품들이 창작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기독교적 유산과 사실과는 멀리 동떨어진 섬인 것 같다.

 우리나라 기독교도 기독교적 소재를 다룬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영화, 문학, 음악, 미술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져 교회의 담장을 넘어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야말로 극단적 세속주의에 점점 깊이 빠져드는 한국 사회를 건져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하고, 이 스산한 가을녘에 생각해 본다.

이상용(MBC 심의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