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으면 한줌 흙으로 돌아갈 뿐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지독한 허무주의에 빠져 죽음을 생각하기까지 이르렀다. 불안과 공포로 몸과 마음이 여위어갈 때 수요일 저녁예배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왔다. 교회의 타종이 소음이라는 이유로 금지되기 전 일이다. 

 종소리는 누군가 애타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되어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일어나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교회에 가면 목마른 영혼의 갈증이 해결 될 것만 같고 오랫동안 찾고 기다리던 누군가가 나를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 어귀에 작은 교회당이 있었다. 고루한 유교관습에 매인 마을이라 성도들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 역시 유교집안의 가부장적인 전통에 매어 살았기에 교회에 다닌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에 끌려 성탄절에 몇 번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십자가를 보았다.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그 때 배운 찬송과 성경이야기 두어 편은 아직도 기억 속에 선연하다.

 종소리는 까마득 잊었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을 되살려냈다. 단발머리 작은 소녀가 손을 호호 불며  눈 덮인 들판을 지나 교회를 향하고 있었는데 그 소녀는 바로 나였다.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의 물결이 영혼 속으로 사무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그렇게 나를 다시 부르셨다. 그 분의 크고 부드러운 손은 나를 깊은 우울증의 수렁에서 건져주셨고 새 삶으로 인도해 주셨다. 말씀 속에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소망이 생겼으며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삶의 방향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나처럼 허무주의에 빠진 것을 보면서 아픈 마음 금할 길 없다. 며칠 전 친척오빠에게 전도를 했는데 그 오빠의 말도, 죽으면 그만이지 뭐가 또 있느냐는 것이다. 영혼은 불멸이라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간다고 했더니 죽어봐야 알지 어떻게 아느냐고 했다.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친척오빠에 대한 안타까움이 깊었다. 십자가 사건이 마음에 분명히 믿어지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 기도가 쌓이면 불신의 어둠이 물러가고 믿음의 은혜가 물밀듯 밀려들 것을 믿는다. 친척 오빠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조임생 권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