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도착한 도쿄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번개가 밤하늘을 쉴 새 없이 밝혔습니다. 빗줄기와 불빛이 뒤섞인 거리는 혼란스러워 보였습니다. 꽉 막힌 도로에는 구급차와 견인차의 비명 같은 사이렌 소리가 반복됐습니다. 이튿날 일찍부터 시작할 업무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한 가운데, 궂은 날씨는 마음까지 우울하라고 부추기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숙소로 향하는 승합차 안은 평온했습니다. 지리에 익숙한 운전사는 침착하게 거리의 혼란을 헤쳐 나갔습니다. 창밖은 위험해 보였지만 우리는 안전했습니다. 세상 속 크리스천 상황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온갖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 안에 머물면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다다를 것입니다. 예수님이 운전하는 차량 안에 머물면 우리는 계속 안전할 것입니다. 늦은 밤까지 우리 일행을 위해 수고한 사람이 크리스천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는 출장 기간 내내 통역과 안내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신앙적 이력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업무와 관련된 그의 언행이 모든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했습니다. 온갖 종교와 물신주의가 득세하는 일본에서 예수를 믿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그는 말보다 행동을 통해 크리스천의 향기를 주변에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출장 기간 동안 도쿄의 하늘은 변화무쌍했지만, 업무는 기대 이상으로 순조롭게 풀려나갔습니다. 능력에 의지하면 막히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뚫리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관행상 어렵던 일도 의외로 쉽게 풀렸습니다. 고비 때마다 기적처럼 돕는 손길이 나타났습니다. 같은 시간 한국에서 아내와 구역 식구들이 헌신적으로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며칠 뒤, 바람을 쐰다며 유명한 밤거리 구경에 나섰습니다. 남자처럼 꾸민 여자, 여자처럼 꾸민 남자들이 이리 저리 몰려 다녔고, 폭력 영화 속에서 갓 뛰쳐나온 것 같은 건장한 남자들이 유흥업소 부근에서 어슬렁거렸습니다. 술이 사람을 먹고 돈이 인간을 삼키는 모습은 서울의 여느 유흥가와 다름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공허함을 술과 돈으로 채우려는 헛된 시도를 그들은 그렇게 밤새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휘황찬란한 조명 간판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지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비까지 내렸습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술 파는 건물 속으로 빨려들듯 사라졌습니다. 술 냄새를 풍기거나 술집으로 유혹하는 사람들과 말을 섞기 싫어 그냥 지도만 보고 길을 찾다보니 몸도 마음도 젖었습니다. 괜한 밤나들이를 자책하며 걷다가 문득 큰 건물과 마주쳤습니다. 한인 교회였습니다. 젊은이들이 웃으면서 쏟아져 나와 거리로 사라졌습니다. 가장 세상적인 곳 코 앞에서 가장 성스러운 복음이 기다리고 있었던 셈입니다.

 지도가 비에 젖어 일본어 활자마저 흐릿해질 즈음, 도움의 손길이 왔습니다. “비를 흠뻑 맞으면서 어디를 그렇게 찾으십니까?” 한국인이었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 남자가 우산을 씌워주며 숙소의 위치를 알려줬습니다. 알고 보니 숙소 앞 불과 20여 미터 앞에서 맴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물로 몸을 녹이며 생각했습니다. ‘복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절실한 사람들 가까운 곳에 항상 존재하지만,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좀처럼 찾기 어려운 것이로구나’ 소중한 교훈을 일깨워 준 뒤 홀연히 사라진 한국 남자는 아마도 하나님이 보내준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필자가 최근 도쿄에서 겪은 일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왜 노력해야 하는지 절실히 깨닫게 했습니다.

나신하 기자(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