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르르르 찌르르르…”

 풀벌레들이 가을을 노래한다.
 올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푹푹 찌는 열기에 숨 막히고, 줄줄 흐르는 땀 때문에 샤워를 해도 돌아서면 금방 끈적끈적해지곤 했다.

 아직도 한낮은 남은 열기로 후끈거리지만 하늘이 파랗게 열리고 아침저녁 살갗에 닿는 바람이 제법 서늘해졌다.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밤에 잠들 수 있다니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찬물을 끼얹고 에어컨을 틀어도 불덩어리를 안고 있는 여름의 본질을 어찌할 순 없었는데, 때가 되니 저절로 불기가 식고 문제는 해결됐다.

 삶도 그런 것 같다. 인생을 항해하는 동안 수없이 만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도 언젠가는 해결될 날이 있는 것이다.
 어떤 분이 “기도는 오래 걸리지만 응답은 잠깐이다”라고 하셨다. 살아가는 동안 누군들 평탄하기만 하랴. 인생의 바다엔 항해하는 배를 좌초시키려는 크고 작은 문제의 암초들이 널려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산고의 고통을 수반하는 우리의 기도는 그칠 날이 없다.

 태산 같은 문제 앞에 내 기도는 달걀로 바위 치는 것처럼 연약해 보이지만 기도가 쌓이면 그 위력은 태산이라도 무너뜨린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손을 놓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분량이 쌓일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아주 곱게 갈아내신다지 않는가. 다만 아직은 그 때가 아닌 것이다.

 왜 하나님은 기다리게 하실까? 응답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동안 우리의 목은 사슴처럼 길어졌는데 왜 늑장을 부리시는 걸까? 그것도 내가 생각하는 때와 하나님의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인데 어른들이나 감당할 것을 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 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나를 돌아보는 겸허함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지 몹시 궁금하던 때가 있었다. 왜 내게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지 항의하기도 했다. 참으로 많은 기도 뒤에야 하나님은 그 이유를 알게 하셨다. 그것은 내 안의 목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목소리는 세미하여서 마음을 집중해야 들을 수 있다. 하늘 가장자리를 흐르는 한 떼의 구름, 이른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 돌 틈 사이에 피어오른 작은 풀꽃 한 송이도 한 조각 말씀의 은혜를 머금고 있다.

 풀벌레 소리는 가을의 소리다. 고난의 계절이 끝나고 결실의 계절이 왔다는 신호이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조임생 권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