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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진실 제대로 알아야”



박환인 원로장로(6.25한국전쟁 진실알리기 운동본부 사무총장 겸 홍보/섭외 이사·해병소장(예)) 

 6·25전쟁 발발 60년 행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천안함 격침사건이 발생해 북한의 호전성과 전쟁도발 위협을 국민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6·25전쟁 종전 57년이 경과했음에도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은 요원해 보이고 오히려 북한이 전쟁 도발과 서울 불바다 위협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 현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또한 이 나라의 장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들이 6·25전쟁의 진실을 너무 모르고 있어 염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6·25전쟁은 직전 한국군의 대비 상황을 되돌아만 봐도 북한에 의한 남침임을 명백히 알 수 있다. 또한 1994년 6월 2일 소련의 옐친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김일성의 남침계획이 들어있는 서류 상자를 전달함으로서 북한의 남침이 입증됐다. 또한 소련 서기장 흐루시초프가 남침을 시인하였으며 일본 공산당원이며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다’의 하기와라 료 기자는 2년 8개월간에 걸쳐 160만 쪽의 6·25전쟁문서를 직접 조사해 북의 남침을 확인함으로서 ‘남침이냐’ ‘북침이냐’하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전쟁의 진실도 모르며 미국에 대한 적대적 감정만을 가지고 있다.

 6·25전쟁은 3년 1개월 2일간 지속되면서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자유를 위해 21개국 군인 195만여 명이 참전해 3만7000명이 전사했다. 특히 미국은 추위로 얼어 죽은 해병대 5000여 명을 비롯하여 3만3000여 명이 전사하고 10만여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8000여 명이 행방불명됐다. 이 가운데는 벤프리트, 아이젠하워, 클라크 UN군사령관, 워커 중장의 아들도 있었다.

 1970년 12월 정상회담을 위해 폴란드를 방문했던 빌리 브란트 서독수상은 맨 먼저 유대인 나치수용소 기념관을 찾아 헌화했다. 퍼붓는 비 속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2차대전시 독일군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용서를 빌었던 그의 행동에 폴란드 국민은 물론 유럽과 전 세계가 과거를 용서하고 화해하게 되었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이에 반해 북한은 용서를 빌기는커녕 적반하장으로 6·25전쟁의 북침을 주장하며 사회적 불안을 조성하고 국가안보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독일의 다하우 강제수용소 벽에는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바로 우리 국민들이 마음속에 새겨두어야 할 경구이다.
 6·25전쟁을 체험하지 못하고 전교조의 오도된 교육으로 전쟁의 진실을 잘못 알고 있는 세대들을 위해 올해 1월 25일 국방부 산하에 NGO로 ‘6·25한국전쟁 진실 알리기 운동본부’가 정식 출범했다. 2006년 12월, 16명의 예비역 장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모임은 6·25 전쟁관련 동영상과 ‘6·25란 무엇인가?’와 ‘6·25의 진실’ 등 책자를 2000여 부를 발행해 전국교회에 배포하며 성도들에게 진실을 알려달라고 당부해왔다.

 금년에는 조직이 확대되면서 만화책 100만권 배포, 6·25전쟁 관련 책자 발행, 글짓기대회, 순회강연 등도 계획하고 있으며 2013년까지 만화책 1000만 권을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배포해 6·25전쟁의 진실을 바로 알릴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최근 조선일보 등 주요 신문들이 6·25전쟁을 재조명하고  역사적 사실을 연재하는 것을 보며 우리에게 잊혀져가는 전쟁을 다시 상기시켜주고 있다.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살아온 북한의 60년에 비해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아래 오늘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다 준 미국 등 우방국 참전용사들. 그리고 피땀 흘려 오늘의 기적을 이룩한 선배들의 노고에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또한 천안함 피격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해이해진 국민의 안보의식과 대적 경각심을 가다듬고 가정과 교회에서 6·25전쟁의 진실을 확실히 알고 올바른 지식을 전해주길 바란다.

 

기사입력 : 2010.06.18. pm 16:40 (편집)
오정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