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만났다. 수십 년 만의 해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언 수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전혀 몰라볼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겉모습은  변했지만 그 미소라든가 눈빛, 말하는 모습이 새록새록 옛 모습을 되새기게 해 주었다. 찻집에 앉아 팔에 턱을 괴고 지나온 생의 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내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자니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가난한 시집살이며 남편의 월급을 간섭하는 시어머니로부터 경제권을 획득하기까지 갈등을 슬기롭게 풀어가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드라마틱해서이다. 게다가 남편 복도 있으니 금상첨화의 인생이 아닌가.

 친구는 투자의 안목까지 있어 상당한 재력을 소유하고 있는데 들려오는 이야기론 어려운 친구를 솔선해서 돕는다는 것이다. 재력은 사치와 오만을 불러오기 쉽다. 그런데 친구는 검소하고 소박해 보였다. 평범한 아줌마 같지만 말에 절도가 있고 철학이 있었다. 대화 중 한 번도 자신의 선행을 나타내는 이야기는 없었다. 평범함 중의 비범함이 아닌가.

 가졌다고 나누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있어야 하고 실천하는 행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가 그랬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마음으로 가는 길이요, 마음에서 손으로 가는 길이라고. 이 말은 다름 아닌 실천의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가난할 때는 화목하던 가족이, 이웃이 재물 때문에 등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재물은 칼날의 양면과 같다. 잘 쓰면 사람에게 덕을 끼치고 잘 못 쓰면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칼이다. 재물을 쟁여두기만 한다면 간접적으로 세상에 화를 입히는 것이 될 것이다. 아이티의 배고픈 아이들이 진흙쿠키를 먹는 것을 보면서 가난의 처절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50,60년대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했던 우리나라 아이 중 누가 견디다 못해 진흙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 인생이다. 지구촌 구석구석 재해를 입은 곳을 찾아 도움의 손길을 펴는 단체나 개인을 보면서 그래도 세상은 따뜻하고 살아 갈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랑하지 않고 누군가를 돕는 손길은 아름답다. 고요하고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이다. 성경에도 ‘오른 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하셨는데 혹여 나를 자랑하는 일이 되어 선행이 선행다워지지 않을 것을 경계한 말씀일 것이다. 세상은 한번 살고 가는 것, 언제 내가 삶의 여정을 끝내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삶은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인가!

조임생 권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