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무척 추웠습니다. 기온이 영하 30도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칼 같은 바람 탓에 체감 온도는 영하 40도로 떨어졌습니다. 폭설이 유난히 잦아 눈은 허벅지까지 쌓였습니다. 옷을 10벌씩 껴입어도, 한기는 뼈 속까지 파고들었습니다. 도시의 안락함에 젖어있던 젊은이에게 최전방의 추위와 졸음은 공포 자체였습니다. 소총과 실탄 등으로 무장한 채 비무장지대를 응시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아! 하나님, 살려주세요!’라고 절규하는 밤이 매일 반복됐습니다. 20년 전 이맘때, 철책선 초병으로 군복무를 시작했던 제 모습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어느 날 밤, 평소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이 다가왔습니다. 구불구불 눈길을 헤치며 외진 초소를 찾아온 사람들은 상급부대의 군목과 군종병 일행이었습니다. 두툼한 헝겊으로 싸매어온 보온병에는 향기로운 커피가 가득했습니다. 몸집이 큰 군종병이 토속적으로 웃으며 커피를 건네줬습니다. 뜨겁고 달달한 커피 한 모금은 지옥 같은 추위에 지친 초병을 단숨에 천국으로 옮겨놨습니다.

 몸집이 호리호리했던 군목장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도를 했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안전’과 ‘건강’과 ‘고난’과 축복’ 등등의 단어들을 말했던 것 같습니다. 향수병을 앓던 병사에게 짧은 기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위로가 됐습니다. 나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이 커피처럼 따뜻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낯선 방문객들은 그렇게 초병들을 위문하며 밤새 전방을 누볐습니다. 이들의 순례는 일정한 주기로 겨우내 반복됐습니다. 커피든 천사들의 모습은 훗날 필자가 복음에 관심을 갖게 되는 큰 계기가 됐습니다.

 최근 불경기 속에 찾아온 기록적 한파와 폭설이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합니다. 노숙인, 독거노인, 철거민, 해고 노동자, 비정규직 등 추위를 더 타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이 마음을 울립니다. 영하 30도까지 떨어진 그해 겨울, 이름없는 초병을 찾아와 따뜻함을 전해준 천사들을 생각합니다. ‘그 동안 나는 누군가에게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 됐을까?’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나신하(KBS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