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CBS에서 방송 중이던 묵상록으로 신간을 한꺼번에 두 권이나 출간하신 선생님이 책과 함께 두툼한 비닐봉투 하나를 건네셨다. “뭔데요?” 들여다보니 살집이 좋은 오이고추였다. 손수 키운 것인데 아삭아삭한 맛이 일품이란다. 농사는 아무나 지을 수 있지만 아무나 농사를 잘 지을 순 없다. 그런데 평생 방송 일만 하고  글만 쓰던 그 선생님은 농부 이상의 농부가 되셨다. 선생님은 노년에 대한 소일거리로 자택 근교에 땅을 빌려 수년째 농작물을 키워오셨다. 닭똥을 한 차 사서 부려두고 한 해 동안 비닐을 덮어두면 푹 썩은 거름이 된단다. 이것을 흙과 잘 버무려 농사를 짓는데 고추 토마토가 허리가 휘도록 열리고 감자 고구마 배추가 얼마나 잘 되는지 모른다며 자랑을 하셨다.

 처음 농사를 짓는다고 나섰을 때 마을 사람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책서방이나 잘하지 무슨 농사야? 별일이구만” 까맣게 탄 마을사람들은 새로 이사 온 허여멀건한 선비가 농사일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게 영 마땅치 않아 텃세를 했다.
 그런데 웬일? 선생님이 일군 밭에서 쑥쑥 실하게 자라는 농작물을 본 마을 사람들은 입이 그만 쑥 들어가고 말았다. “아니 예사 솜씨가 아닌디? 어디서 농사깨나 지어본 거유?” 사람들은 그제야 다가와 말을 붙이고 친구가 되었단다. 

 우리 집에도 자그마한 텃밭이 있어서 상추랑 고추랑 호박을 심었는데 고추와 호박은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부실하던 차라 부지런히 농사법에 대해 여쭈었다. 단호박 다섯 포기에서 수확한 열매가 단 한 개뿐이라고 했더니 선생님은 웃으며 대답해 주셨다. 거름도 좋아야 하지만  벽이나 키 큰 식물이 있어 바람을 막으면 식물들은 생장이 어렵게 된다고. 더  중요한 게 있는데 식물에게 칭찬을 많이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식물도 칭찬을 좋아한다니 우스웠다. 하지만 선생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칭찬을 받고 자라난 식물과 방치한 식물이 얼마나 그 결과에 차이를 보이는지 체험사례까지 드셨다.

 칭찬을 하면 고래도 춤춘다고 하더니 식물들까지 춤추게 하는구나. 그런 칭찬을 우리 인간세상에서는 얼마나 하며 사는가 생각해 보았다.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미움과 분노의 가시들을 쑥쑥 키워 서로 찌르며 상처 입히는 이 세상이다. 칭찬과 격려의 글은 감자밭에서 바늘 찾기다. 

 칭찬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들은 자존감이 높고 긍정적이며 활달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삶이 피곤한 어른들도 진심어린 칭찬 한마디가 한 사발 보약보다 나으련만. 어느새 무더위의 허리가 꺾이고 아침저녁 풀벌레 소리가 시원해졌다. 미워하며 분노하며 살기엔 너무나 아까운 시간들이 바람처럼 지나간다.                        

조임생 집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