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수·김태원·이영길 장로(왼쪽부터)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재미있고
고생했던 통역시절의 옛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리교회가 예배 통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조용기 목사는 일찌기 대성전에 통역실을 만들 것을 지시하고 우리교회를 찾는 외국인들의 예배 편의를 도왔다. 80년대 우리교회는 이미 영어, 일본어, 중국어 통역을 시작했고, 90년대부터는 불어 등 다양한 언어에 대한 통역을 전개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당시 통역실을 주름잡았던 3인방 김광수 연로장로, 김태원 연로장로, 이영길 장로(현 외국어예배분과위원장)를 만나 추억담을 들어보았다.
세 명의 장로 중 가장 먼저 예배 통역을 시작한 사람은 김광수 장로였다. 30여 년 전 봉사를 시작한 김광수 장로는 “목사님 설교가 너무 빨라 반도 통역 못했던 기억이 나요. 통역을 듣던 일본인들이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들을 정도였으니까”라고 회상했다. 당시 주일 2·3·4부 예배와 금요철야예배 일본어 통역을 맡았던 김광수 장로는 고된 작업에 전립선비대증이 걸려 고생하기도 했다.
김광수 장로 혼자 봉사하는 것을 안타깝게 본 이동규 목사(당시 비서실장)가 김광수 장로를 도울 통역자로 세운 사람이 바로 김태원 장로였다. “안수집사 시절 봉사를 시작했는데 처음 두달 간은 입이 떨어지지 않아 통역을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거냐’하고 호통치는 김광수 장로님의 말에 통역을 하게 됐죠”
김광수 장로가 은퇴하고 나서 2·3·4부 일본어 통역을 맡게 된 김태원 장로는 통역 중 은혜를 받아 눈물을 흘린 게 한 두 번이 아니라고 말했다. “목사님은 언제나 결론을 맺으실 때 성경을 인용하시며 강조하셨죠. 저도 그분의 감정과 톤을 따라 통역했는데, 그때가 되면 성령의 감동으로 코끝이 찡해지면서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어찌나 미안하던지… 나중에 일본인들이 자신도 그 때 함께 은혜받고 눈물이 났다고 말해주는데, 그 때 알았죠. 통역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요”
김태원 장로는 2·3·4부 예배를 연달아서 통역하다보면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헤드셋 볼륨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 때문에 김태원 장로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TV를 볼 때 자꾸 소리를 높여 식구들의 원성이 높다고 한다.
이들 중 마지막에 합류한 이영길 장로는 영어통역 봉사자였다. 무역업을 하는 덕에 영어를 잘 했던 이영길 장로는 섭외실에서 봉사하다 1부 예배 통역을 맡게 됐다. “1부 예배에 오는 외국인들이 있었어요. 교회는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죠. 은혜받겠다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이영길 장로는 통역 당시 조용기 목사의 설교가 너무 빨라 통역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황당하더라구요. 그래서 미국 설교 사이트에 접속해 말이 가장 빠른 설교자를 골라 자료를 받고 반복해서 듣고 통역하는 연습을 했죠. 나중에는 조용기 목사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통역을 끝내게 됐죠”
이영길 장로는 지금처럼 설교 요약본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고 한다. 김태원 장로 역시 “맞아. 그때는 이메일도 없어 조 목사님의 설교 제목과 대지를 팩스로 받았지. 목사님이 외국 성회에 나가실 때면 호텔 종이에 메시지를 적어 한국으로 보내셨는데 너무 늦게 오면 비서실에서 그 종이를 바로 팩스로 넣어줘 우리는 조 목사님이 어느나라, 어느 호텔에 묵고 계신지도 알았다니까”라고 설명했다.
세 장로는 옛 이야기에 즐거워하며 “그래도 세계적인 주의 종의 설교를 통역할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었고,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김태원 장로는 우리보다 축복을 더 받았어. 통역하기 전에 비서실로 찾아가 조용기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통역했던 사람은 이 사람 혼자였다니까. 대단해” 김광수 장로의 설명이었다. “우리도 예배 위원이잖아요. 예배에서 통역자는 없어서는 안될 막중한 사명자니까요. 통역, 정말 힘든 작업이에요. 언어를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기도를 많이 하고 말씀도 많이 읽어야 해요. 그 나라의 언어를 잘 통역하려면 문학작품도 많이 읽어 어휘력도 길러야 하구요. 저는 후배 통역자들이 사명감을 갖고 이 일에 최선을 다했으면 해요”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김태원 장로의 말에는 아직도 통역 사역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었다.
세 장로는 당시 통역자들 가운데 영어 통역을 맡았던 이혜규 전도사를 떠올리며 어떻게 사는 지 궁금해 했다. 안타깝게도 캐나다 선교사로 사역했던 이혜규 선교사는 2003년 암으로 소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