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화사한 날씨에 나무들은 연둣빛 새 잎을 흔들고 꽃들이  함박 웃음을  머금었다. 산에 오르면 마음에 언제나 초록물이 든다. 세상 우수사려가 티끌처럼 날아간다. 사는 것이 별 시답지 않은 사람들에게 산은 좋은 친구이고  명약이다. 삶의 의욕이 꿈틀거리게 하니까.  하지만 이 아름다운 날도 마음의 창에 스스로를 가두고  어둠 속에 우는 사람들이 있다.

 과부가 과부 사정을 안다고 하던가? 심각한 우울증의 터널을 빠져나온 나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에게 동병상련의 특별한 정을 느낀다. 우울증은 자기연민이 발단인 경우가 많다. 40대 후반을 넘어서면 많은 여성들이 우울증의 늪으로 빠지는데 자식들은 자라 어미의 품을 떠나고, 남편은 남편대로 직장에서 중후해지니 외톨이가 된 듯한 서운함을 가눌 수 없게 된다. 그러다보니 자기연민에 빠져들고 어두운 방안에 칩거하는 것이다. 요즘은 사회적 요인으로 인한 남성들의 우울증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안타깝기만 하다.

 친구의 아들은 전도유망한 청년인데 성품이 여리고 정직했다. 좋은 대학을 나와 모 건축회사에 입사를 했는데 주어진 자리는 공교롭게도 이권이 개입돼 청탁을  받고 뇌물을 받는 자리였다. 기존 직원들은 이 청년을 자신의 대열에 당연히 합류시키려 했다. 청년은 고민하고 갈등했다. 윤동주의 시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는 삶을 꿈꾸던 청년은 괴로워하다 결국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집에 틀어박혔다. 사회가 키운 부조리가 사회에 희망찬 발걸음을 내디딘 아름다운 한 청년의 삶을 구겨놓은 것이다.

 산을 오르는데 왜 친구의 아들이 생각나는 것일까? 법 없이도 살 그 친구가 요즘은 아들로 인해 눈물 마를 날이 없다. 다음엔 그 친구와 함께 산을 오르고 싶다. 세상에 실망한 그녀에게 산이 말해주겠지. 다시 일어서라고. 세상이란 수레가 아직도 굴러가는 것은 정직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힘을 모아 끌어주고 밀어주기 때문이라고.              

조임생 권사(동화작가)